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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탐구하는 새로운 과학
데이비드 버스 지음, 이충호 옮김, 최재천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사람들은 생존이나 번식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활동을 왜 그렇게도 많이
할까?
사람들은 왜 미술과 문학, 음악, 스포츠 행사를 직접 하거나 소비하느라 몇 시간, 몇 달 혹은 몇
년을 쏟아 부을까?
David Buss 진화문화심리학
어제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빅뱅이라고 불리는 그 순간의 수수께끼가 최초의 순간으로부터 137.5억년(2010년 3월 천체물리학 저널에서 미국과 독일 과학자들이 허블 망원경으로
수집한 자료와 우주배경복사탐사 위성(WMAP) 자료를 종합해 우주 나이를 137억 5천만년으로 확인, 발표했다.)이나 지난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든 일 같다. 하지만
과학은 단순한 믿음과 달라 증명이 가능했던 만큼 신뢰를 가져도 좋을듯하다. 다만 그 흔적이라는 것의
결과는 한참 그것도 아주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니 만큼 지금 와서 달라질 것은 없을듯하다. 그저 우주라는
것이 누구에 의하여 6일만에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열정에 의하여 탄생한 카오스와 같은 것인지를
밝혀내는, 어찌 보면 서양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기원에 관한 문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과학적 근간을 다진 결과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던
간에 의문은 남는다. 시간과 공간. 그것의 처음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존재라는 개념이 없는 존재 그 자체일까?
어느 나라의 신화이건 거의 대부분 우주의 처음은 혼돈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혼돈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일까? 그리고 그 혼돈의 존재는 무엇에 의한 것이며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시간이 혼돈과 함께 창조된 것이라면 공간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누군가가 무엇을 만들기 위해 어딘가에 존재하였다면 그 어딘가는 무엇인가? 그렇게
어딘가가 있었다면 그 때로부터 시간의 존재는 흐르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문제가 어떤
존재를 가상하여 동시에 또는 일순간의 차이로 앞뒤를 정하는 것은 끝없는 존재의 의문을 만들어 낸다.
이런 질문은 끝이 없는 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일부의 의견으로 그냥 존재했던 것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종교적인 의미로서 창조에 관한 그런 가정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믿는
존재의 개념을 위한 것일 뿐임에 다름없다고 보여진다. 그에 반해 빅뱅이라는 의견은 빅뱅이전의 존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므로(구스 Alan Harvey Guth에
따르면 대폭발 이전의 우주는 에너지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거품 같은 형태의 에너지가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구스의 이론은 현재의 불 균일한 우주의 모습을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보다 더 시공(時空)에 대한 설명을
도와준다고 보게 된다. 어쨌든 그 어느 곳에서 137.5억년전에
어떤 존재가 스스로의 열정으로 폭발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지금의 우리와 주변의 모습이지만 아직 끝은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제 과거와 미래를 나누고
현재라는 구분을 하여 하루하루를 쪼개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매 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으려 해도 결국에는 아마 빅뱅 이전의 존재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우리 인간과
모든 존재의 순환에 대한 본말시종(本末始終)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그렇듯이 나는 스물이 채 되기 전에서부터 그
순환과정에 있는 나라는 것의 가치와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왔다. 그러다 최근에 생각의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나름대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에 관한 것이다. 그런 저런 모든 의문과 결론을 내리게 하는 마음이
삶의 존재를 생각하게 만드는 주원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왜 생겨나며 그것을 따라야 하거나 결과를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조차도 마음이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과연 오롯이 나의 것인가? 여기서부터 끝없는
화두가 뒤를 이어나간다. 마치 에셔 Escher의 그림처럼
말이다.
세월이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나이에
걸맞게 스스로 그것은 무엇이다라고 생각을 정리했지만 아직 끝이 아니기에 더 화두를 이어가야만 한다. 다만
세상을 살면서 처음 고민했을 때 가졌던 죽음의 그 순간을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싶다는 의지는 지금은 시들해졌다.
그 이유는 그 때는 그런 의지가 남아있어야 죽음을, 타나토스의 경계를 넘는 순간에 무엇을
맞이할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마저도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나무를 많이 생각한다. 마치 죽은 듯 말라비틀어져 지표면에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나리꽃이 계절이 바뀌면서
어느새 연 초록의 잎이 딱딱한 흙을 뚫고 나오고 있다. 들이나 산에 피는 나리는 아직 두어 달이나 지나야
볼 수 있건만 베란다의 나리꽃 화분에서는 벌써 잎을 틔우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들도 세상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137억년이라는 시간을 견디어 온 것 아닐까 한다.
얼마 전의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지구의 순환주기가 1만년 전쯤을 시작으로 해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공안의 지구의
순화주기를 고려해보면 지금쯤 지구는 빙하기에 접어들어야 하지만 인간들이 한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환경을 바꾸었고 그 바람에 빙하기의
시기가 늦추어졌다고 본다고 한다. 인간들이 먹고 살기 위해 농업을 하면서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열로 인하여 발생한 가스 등이 지구를 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1만년.
137억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은 시간일 텐데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역사나 고고학에서 밝히는 사건과는 별개로 인간의 마음은 그 동안 어떻게 변해왔을까?
글을 만들고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결과 오늘날 우주의 기원을 밝혔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얼마나 변했을까? 그 인간의 본성을 다룬 많은
현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 과학자들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말한 것은 무엇일까?
공통으로 말했다고 여겨지는 무엇은 있다고 보여지지만 역시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글로 남겼기 때문에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모두 각자의 일이다. 모두 자신만의 관점으로, 자신만의 환경과 자극에서 얻어지는 “마음”이, 그 뜻을 이해하고 순환의 고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같이 모여 사는 수가 적었기에 사용하는 언어나 뜻도 적었을 것이지만
인구가 늘고 사회가 형성되고 서로 교류하는 시간과 접촉이 많아지면서 인간들만의 제도가 생겨났을 것이고, 그
제도는 또 다른 제도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수양버들과도 같이 많은 가치들이 생겨났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제도와 가치 속에서 살면서도 사람들은 모두가 동시에 같은 뭔가에 매달려있지는 않는다. 돌을 쪼개는
사람이 있으면 그 돌을 다듬는 사람이 있고 다듬어진 돌을 주워다 다른 것과 바꾸는 사람이 있듯이 누군가는 그런 일들에 흥미가 없고 그렇게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현재에 하는 일들을 사람들은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다. 그 것은 지난 만년의 세월 속에서도 불과 몇 백 년이라는 시간 안에 다듬어지고 연마되었으며
물리적 기술과 융합되어 현실과도 같은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들여다 보면 만년 이전의 인간들의 속성인 생식과 번식을 위한
투쟁이 그대로 숨겨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인 듯 하다.
단, 내 생각에 시공간에 대한 인식에
동서양이 같다고 여겨지지 않기에 과정과 표현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이 주장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접근
방법을 택했다. 첫 번째 접근방법은 과시 가설이라 부를 수 있다. 이
가설에 다르면, 문화는 “서로 다른 짝짓기 경쟁에서 서로
다른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는 수많은 개인들 사이의 성 경쟁에서 나타나는 창발 현상(Miller, 1998. P.
118)”이다. 남자는 특히 다양한 여자들에게 구애 과시 행동을 널리 알리는 전략으로 미술과
음악을 만들고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
문화를 설명하는 두 번째 접근방법에서 핑커는 비록 추측에 치우친 것이긴 하지만
이 수수께끼들에 일반적인 답을 제시한다. 핑커는 그 답은 미술과 음악과 문학을 위한 특정 적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형태와 색과 소리와 농담과 이야기와 신화 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는 “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한 마음기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잘 익은 과일을 쉽게 찾도록 설계된 컬러 시각 기제는 그러한 패턴을 모방한 그림을 만듦으로써 즐겁게 작동시킬
수 있다. 그림, 사진, 영화, 인터넷 사이트는 생식력이 높은 여자를 알리는 단서에 대한 심리적 선호를 이용하기 위해 그러한 기제가 원래 주의를
집중하고 추구하도록 설계된 패턴을 모방할 수 있다. 우리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도록 인공적으로 약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진화한 심리기제를 자극하기 위해 미술과 음악과 문학작품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그 기제들이 원래 반응하도록 설계된 자극을 모방한 문화적 산물을 발명함으로써 기존의 기제를 인위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요컨대, 이러한 문화활동은
적응이 아니라 비적응적 부산물이다.
핑커는 음악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 나는 음악이 우리의 정신 능력 중 최소한 여섯 가지의 민감한 부분을 간질이기 위해 만든 정교한 과자인 치즈케이크가 아닌가 의심한다.” 그러한 정신능력에는 언어, 청각적 장면 분석, 감정적 외침, 서식지 선택, 운동제어, 가 포함된다.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즐겁게 느끼는 음악의 패턴들은
우리의 진화한 기제들이 처리하도록 설계된 자연의 자극을 인위적으로 모방한 것들이다. 소설과 영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다. 희극과 비극을 묘사하는 단어, 줄거리, 이야기는 다양한 진화한 기제들을 촉발함으로써 즐거운 감각을 활성화 시틸 수 있다. "
제 13장 통합 진화 심리학을 향해 진화문화심리학 미술, 소설, 영화, 음악의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