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쇼에게 세상을 묻다 -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일기 외 옮김 / TENDEDERO(뗀데데로) / 2012년 12월
평점 :
부동산은 그 모두를
만들어내는 아주 찝찝하고 끈적거리는, 마치 달콤한 냄새를 맡은 벌들이 빨대를 꼽으려고 달려드는 송진과
같다.
그 부동산을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d Shaw)는 이렇게 말했다.
“‘봉토’가 ‘작고 좋은
자산’으로, ‘책임을 지닌 공직자’가 ‘무책임한 무위도식자’로
바뀐 것은 농업과 기사도를 기반으로 한 봉건시대가 가고 상업과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였다.”
,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로지 지주들만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갖게 된다. 실제로 그들은
국가의 여윳돈을 전부 차지한다. 이러한 여윳돈을 자본이라고 한다. “땅을
소유한 덕에 먹고 사는” 지주들은 이제 자본가가 되어 사업가들에게 자본을 빌려주고 지대를 받듯 이자를
받는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토지에 대한 계급 독점이
이루어지고 나면 반드시 자본에 대한 계급 독점이 뒤따른다.” ……. / 문제는 토지다!
이런 과정은 인간의
욕망을 한없이 부채질한다. 욕망은 과잉 생산을 낳고 잉여생산물은 부도덕한 욕심꾸러기를 만들어 내고, 투기와 절도 등의 범죄를 발생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제한적인
토지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위치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며 현재가 누릴만한 세상이라고 여기는 자들과 자신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지상지옥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서로 맞대하고 살아가도록 사회를 양분한다.
그래서 늪에 빠진다. 영화 속의 시장, 하원의원, 상원의원, 마피아, 카지노 재벌 등은 늪지에 머무는 악어와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한다. 사기꾼은 그들에게 토기를 몰아다 주는 여우들이고……
부동산의 근본인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책략을 가진 정치가가 사태를 안정시키고자 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
쇼와 마찬가지로 헨리
조지도 그의 책에서 비슷한 논조로 주장을 했다. 그의 주장은 더욱 더 지금의 시대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랬다가는 당장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이어야
한다고 본다. 자본을 잔뜩 토지에 묻어둔 사람이거나 그들에게서 낙숫물이라도 받아 먹을 수 있다고 희망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부류의 존재도 아니면서 빨갱이 운운하는 사람은 그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유흥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하루살이랑 다를 바 없다. 버나드 쇼나 헨리 조지 두 사람 모두 100년에 가까운 과거에 그런 소리를 했고 지금의 상황과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이 예견한 내용은
지금 상황에서 전혀 틀렸다라고 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큰
원인은 토지소유의 불평등이다. 토지소유는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지적. 도덕적 상황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요인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중략-
물질적인 진보는 인간의 토지에 대한 의존관계를 없애지 않으면 오히려 토지로부터 부를 생산하는 힘을 보태줄 뿐이다. 따라서 토지가 독점되면 물질적 진보가 극도로 이루어지더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노동밖에 가진 것이 없는 계층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때 물질적 진보는 토지가치를 올리고 토지소유자의 힘을 강하게 해줄 뿐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토지소유는 귀족층의 근거이자 거대한 재산의 기초이며 권력의 원천이다.” (제14장 부의 증대 속에 존재하는 빈곤)
DTI, LTV를 완화해서 청년층이 3억이 넘는 집을 대출을 받아서라도
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주거환경을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지, 그들의 이자지출을 무시하는 말인지 알 수
없다. 그게 아니면 누구나 다 그 정도의 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거나 증여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돈이 그만큼 없으면 전세주택, 임대주택, 행복주택에 입주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알량한 입주물량을 모르고, 그 임대주택에 산다고 하더라도 가뜩이나 허덕이는 살림에 소득의 25%이상을 월세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아닐까? 수도권의 전세 값이 평당 천만 원을 오르내리는 세상에 바늘귀 같은 직장에
취직해서 10여년을 이자에 허덕이며 살면서 주인 눈치를 보고, 그나마
월세로 얼마를 더 내라는 압박에 더 멀리 더 멀리 이사해야 하는 세상을 모는 것일까? 국민소득 4만불의 초석(달성이라는 말은 안 했다?)을 제시하면 그들이 저절로 그렇게 부자들이 흘리는 낙숫물을 받아먹을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을 모르는 것인가?
또 그것이다. “적당한 경제 적당한 공포!”
버나드 쇼나 헨리 조지나
모두 부동산에 대하여는 한 목소리로 말한다. 토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성서에도 그랬단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라고 레위기 25장 23에서……)생산과 관련된 경제적 사안이기도 하며, 사생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본에 의한 영구세습은 사회적 해악일 뿐이며, 국가를 병들게 하는 것으로 국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혁명적으로 실시하지 못한다면 점차적으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