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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의 신체지도
샌드라 블레이크슬리 & 매슈 블레이크슬리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다미디어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영화에서는 데넷 노튼이라는
과학자가 뇌 속에 칩을 심어 넣음으로써 그의 감정과 이성을 통제하여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는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로보캅은 중앙통제센터의
데이터처리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그 자유의지라는 것 때문에라도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처럼 기능하는 기계의 발명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간과 기계의 조합은 발명되지 못할 것
같다. 윤리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 상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되므로, 만약 누군가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유기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적 수준이
발전한다면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 2009”에서 보여 준 Wired Head라고 불리는 인간상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인간일까? 어쩌면
그런 생각, 즉 인간의 모습이 뇌를 빼고는 모두 인공물인 사이보그로 바뀐다고 해서 자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인간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근원은 그들의 종교에 의한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 그런 세계관이 만약 계속 이어진다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들의 종교관에 내재한 개념으로 신체적 형상이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과학이 주는 환상을 구체화 시켜 형태로써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 실체화한다고 생각할 때, 영혼이 들어있다는
데카르트의 송과선만 남아있다면 모두 인간으로 보아도 무관하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이런 영화 속의 형상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적 상상의 실체를
들여다 봤을 때 인간에게 뇌만 살아있다고 한다고 하여도, 또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심장과 폐가 기능을
하는 일부 인간이라고 하여도, 그가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뇌에 심어 놓은 컴퓨터 칩의 통제를 벗어나는 의지를 실행했을 경우 그에게는 경험에서 얻은 자극을 감정으로 전이시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으므로 ‘인간적’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데넷 노튼 박사가
아닌 현실의 데니얼 데넷이나 라마찬드란V.S. Ramachandran, 가자니가Michael S. Gazzaniga와
같은 뇌 신경과학자들의 의견을 보면 우리 인간의 행동의 동기는 어떤 하나의 명령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떤 호문쿨루스도
‘사령탑’역할을 하지 않는다. 사령탑이 없기 때문이다. 자아 구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지도도 없다. 과학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적어도 그런 요체 같은 건 없다. 뇌는
고도로 상호작용적이다. 각각의 부위, 곧 각 지도는 마음의
정신작용에 독특한 인장을 새겨 넣을 뿐이다.” 뇌 속의 신체지도 2장
뇌 속의 작은 인간 37P 샌드라Sandra & 매슈 Matthew 블레이크슬리 Blakeslee저(著) 이다미디어 간(刊) 2011
그렇게 뇌는 수 십만 년 동안 인간의 몸 위에 자리하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그 존재가 인간의 핵심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밝혀지고 있는 것 같다. 과학자들이 인간의 뇌가
지닌 비밀을 알아낸 것은 아직까지도 몇%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기계의 발전으로 불과 몇 년 전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부분도 있다고 하며, 언어중추를 지배한다는
브로카 영역 Broca Area이나 문자를 이해한다는 베르니케 영역 Wernicke Area에 대한 이해도 발견된 시기에 비하여 최근에야 뇌 촬영장비들을 이용하여 인간의
뇌 속에 자리한 뉴런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라마찬드란과 그
외 학자들에 따르면 거울 뉴런이야말로 인류의 진화가 10~20만년 전에 대약진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끝내주게 지적인 존재로 변모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하는 셈이다. 공통 기어(基語, protolanguage, 소리가 지도화 되어 입술과 혀를 움직이는), 공감, 마음이론(theory of mind, 생각과 동기가 남한테서 기인한다고
보는), 남의 관점을 채택하는 재능은 인간의 독특한 능력이다. 이들
능력은 거의 틀림없이 그 즈음에 생겨났을 것이다. 거울뉴런으로 인해 문화가 전파되는 최초의 여명기가
시작되었다. 과학 저술가 맷 리들리(Matt Ridley)의
말마따나 본성(nature)은 양육(nurture)으로 생기는
것이다.” 9장 거울아, 거울아 250P
언제, 어느 때 인간의 기술이 태양계를 넘어가는 여행을 할 정도의 수준이 되던가, 귀찮게
몸을 움직이느니 대리 기계를 만들어 자신의 행위를 대신하게 하고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거나 쉬는 행동이 가능해지는 날이 온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경험과 환경의 자극을 통해 얻은 감정이 있으며 그것을 적절한 사회적 판단을 통해 반응을 해야만 하는 ‘자아’라는 개념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내가 지금 10년간을 통증 속에 산다고 해서 통증을 없애고자 머리를 열어 뇌를 꺼내 통증을 느끼는 부위를 잘라낸다고 했을
때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난다고 해도 자아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자아란 윤리나 도덕성을 갖춘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그저 환경에 반응하는 감정의 덩어리쯤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대하여는 자아와 달리 여러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우선은 그렇다.
로보캅은 뇌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길. 다른 신체지도를 이용하여 감정을 되살렸으며 그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인간성을 다시 찾은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 자유의지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가 환각이고 오해라 해서 우리 같은 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자유의지가
환각이라는 진술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아와 자유의지가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하는 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환각이고 오해일 터이다. 자유의지가 뇌에서 고등의 신체지도와
감정 및 기억 장치와 맺는 유연한 되먹임 고리가 아니라, 무한한 능력을 갖는다는 게 자유의지에 대한
환각이다. 자아가 분산되어 있는 창발적 인격이 아니라 무슨 고갱이쯤 된다는 생각이 자아에 대한 환각이다. 마무리하는 글 3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