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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힘 - 복음을 여는 레오 14세 교황의 10가지 단어
레오 14세 지음, 로렌조 파치니 엮음, 이재협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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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나처럼

평화가 모두와 함께 를 이미 읽었음에도

교황님 강론을 좀더 듣고 싶어서, 4개월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가 더 있을까 싶어서 이 책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다른 책을 읽으셔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내용이 많이 겹친다.


교황님이 되시고, 1년간 대외 행사에서 하신 강론들을 엮은 것은 두 책이 같아서 결국 출처는 동일한 셈인데 이를 전문을 싣고, 교리해설과 같이 실은 책이 '평화가 모두와 함께'이고,

복음의 힘은 교황님의 사목활동에서 강조되는 10가지 키워드에 맞추어 강론들의 부분들을 발췌해놓은 책이다.


신자로서 좀더 접근하기 쉬운 것은 복음의 힘이다. 생활 중에 기억하거나 묵상하는데 필요한 좋은 '문장들'이 담겨 있어 기도 중에 떠올리기에 쉽다. 마지막 옮긴이의 글에 이재협 신부님이 남겨주신대로 "복음이 오늘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묻는 독자라면, 또 그 물음에 레오 14세 교황님의 답을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던 독자라면 이 책은 더없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관상은 우리의 교만을 잠재웁니다. <2장 마음> - P39

주님께서는 ... 자리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이 자리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 P45

우리가 제대로 살아간다면, 시대도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우리 자신입니다. <3장 교회> - P54

교회는 도덕주의와 종교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의 시선에 대한 응답니다. - P56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삶을 간직한 채 서로 함께 걸어가도록 합시다. - P58

하느님께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7장 복음> - P113

이 조급함이 종종 연민을 가로막습니다. - P106

절망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 그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 P108

하느님께서는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합시다. "우리 본당과 공동체,단체와 운동,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자비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어야"합니다....연약함은 함께 살아갈 때 변화됩니다..
<8장 연약함> - P126

가장 큰 가난은 하느님이 필요 없다고 여기며 그분 없이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불의는 나눔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정의는 수고를 요구합니다...<9장 정의>

피조물에 대한 돌봄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참된 소명입니다... 환경은 우리의 정의를 요구합니다.<9장 정의>

우리가 내적으로 목마르고, 불안하며, 미완성된 존재라 느껴지고, 의미와 미래를 갈망하고 있음을 느낀다 해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병든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입니다! <10장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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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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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깝고도 낯선 땅 대만, 그곳에서 만난 우리의 야만

1970년대 대만의 시골 마을 '용징'. 그곳은 주류가 될 수 없었던 변두리 사람들의 거대한 무덤이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가족이 겪는 주변인으로서의 삶과 그들이 받는 대접이 우리나라의 그 시절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경악했다. 대만의 근현대사가 한국의 역사와 이토록 겹친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이제껏 무지했을까.

주인공 집안의 다섯 딸은 이름도 비슷하고 중국식 발음도 낯설어 초반에는 인물 관계도를 메모해가며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아픈 사정이 이해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책장을 멈출 수 없었다. 도대체 톈홍은 왜 베를린에서 T를 죽여야만 했는가. 다른 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평생을 가부장제의 폭력 속에서 한 많게 살아간 어머니 '아찬'은 왜 귀신으로도, 화자로도 등장하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해 버린 것인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추가되는 수수께끼들은 나를 용징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갔다.

2. 용징의 귀신과 무진의 안개, 그리고 소외된 자들

처음에는 이 소설을 한국 문학의 고전 《무진기행》 속 '무진'처럼 음산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묘사가 거듭될수록 용징은 전혀 음산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저 덜 계몽되고, 느리게 발전하는 평범한 농촌일 뿐이다. 대만의 경제 성장과 발맞추어 누군가는 성장의 단물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대적인 성장 속에서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소외되고 배격당한다. 그렇게 약하고 서러운 자들은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


문득 나의 유년 시절에 유독 처녀귀신 이야기나 학교괴담이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그런 괴담들이 사그라진 이유가, 이제는 억울하고 한 맺힌 처녀와 학생들이 그 시절보다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3. 주류의 오만함과 문학의 경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농촌 공동체에서 '여자' 혹은 '성소수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이 부조리다. 그 억압 속에서 인물들의 인격은 서서히 정상 궤도를 이탈해 파멸로 치달아간다. 그들을 그렇게 몰아세운 주류들의 폭력과 오만함은 역겨울 정도다. 셋째의 남편이 보여주는 뻔뻔함, 샤오왕의 거만함은 약자를 소모품처럼 다루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결혼한 며느리는 아직 형성 중이던 인격이 시어머니의 폭력 속에서 일그러져 간다. 이 모든 장면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공동체가 만들어낸 폭력의 결과다.

어릴 적의 나는 문학을 읽으며 ‘모든 주류들이 저렇게 못된 건 아니잖아. 왜 문학은 가진 자들을 이토록 악마화할까?’*라며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사회 곳곳의 전장에서 승리자의 지위를 차지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악행을 어떻게 영웅화하는지 목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사건들은 아무리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이 소수라고 하여도 인간성에 대해 너무 큰 실망을 주는 사건이었다. 문학이 그려내는 권력의 야만성과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넋두리하시듯이 현실은 때로 문학보다 더 잔인하다.

4. 나가며: 울타리는 언제든 나를 배제할 수 있다

이 소설의 귀신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다. ‘아산’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반전은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회가 만들어내는 울타리가 언제 나를 배제하고 둘러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항상 안전하게 울타리 '안'에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만이자 어리석음이다. 누구도 가여운 존재로 만들지 말아야겠다. 나 또한 언제든 울타리 밖의 '귀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만의 천씨 집안 사람들의 기구한 팔자가 나에게 준 메시지였다. 그리고 산 귀신들과 죽은 귀신 모두 말한다. "울지 말라"고, 누구도 울타리 밖으로 내치지 말자. 그리고 울타리 밖에 있더라도 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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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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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삶의 종결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책들에 손이 간다. 사순 시기에 이어 내게 찾아온 책은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다.

1. 내 안의 아녜스와 로라: 더하기와 빼기의 싸움 

죽어 없어질 인간들이 마치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탐욕을 부리고, '영향력'이라는 이름의 불멸을 꿈꾸는 모습이 소설 내내 이어진다. 그 어리석음이 민망할 지경이지만, 내 안에도 아녜스, 로라, 폴, 그리고 아베나리우스의 모습이 들어앉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성당에서, 집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소셜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히며 '더하기로 자아를 부풀리는' 로라가 된다. 그러다가도 한편으론 타인의 모든 평가를 거부하고 조용히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카카오톡에 생일 알림이 떴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비공개로 돌리고, 차를 고를 때면 무조건 검정이나 회색을 골라야 안심하는 나는 철저히 '뺄셈으로 자아를 지워가는' 아녜스이기도 하다. 이들이 벌이는 난리 속에서 마치 대속하는 어린양을 보듯, 내 안의 불멸을 향한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2. 거장의 '명대사 차력쇼'와 인권의 역설 

민음사 TV에서 이 책은 기억할 만한 문장이 많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스스로 거장임을 아는 대가가 우매한 민중에게 깨달음을 하사하려는 강한 열망이 느껴진다. 좋게 말하면 인간성에 대해 뼈아픈 고찰을 하게 만들고, 비뚤게 보자면 "이 노인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라는 불만이 나올 법도 하다.

"인권을 위한 투쟁은 대중화될수록 점점 구체적인 내용을 상실한 채,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통된 태도가 되었고, 모든 욕구를 권리로 바꿔놓는 일종의 에너지가 되어 버렸다."

불법 주차 단속을 피하려고 ‘도심에 차를 끌고 나올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브리지트의 모습에서 이 구절은 나온다. 줄거리의 핵심은 아니지만, 내게는 이 장면이 가장 오래 남았다.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할 가치라고 믿어온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손쉽게 휘청이는지, 그 현실을 요즘 계속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권이라는 불멸의 가치가 개인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공허한 수사로 변질된 모습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폴의 그 '가벼운 진지함'은 민망해진 내 속내를 사정없이 헤집어 놓는다. 사십 대에 접어든 나 역시, 브리지트 같은 젊은이들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나의 소멸을 조금이라도 유예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그 비겁한 욕심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3. 메아리 없는 소멸을 꿈꾸며

"자기 뒤에 메아리를 끌며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나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 의해 해석되고 이미지화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왜곡과 오해는 필연적이다. 100% 순도의 이해란 불가능하다. 메아리처럼, 귀신처럼 남느니 차라리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

그런데 정작 550페이지가 넘는 소설에서 문장 차력쇼를 펼치신 쿤데라 님은 이 수많은 메아리를 남기고 얼마나 불쾌해지려 하신 걸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완전히 잊히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완전한 소멸이 두려운 이 모순.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               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샘으로, 온               우주가 따뜻한 비처럼 내려와 들어가는 돌 수반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문득 내 수호성인인 페르마의 성녀 소피아를 생각한다. 동정녀이자 순교자라는 성스러운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 외의 기록은 전무하다. 생몰년도, 어록, 행적조차 남지 않았다. 와, 정말 딱 좋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남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 또한 결국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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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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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어렵다. 가톨릭 신자가 죽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책인데 어렵다.


죽음.

우리 인생에서 100% 확실하게 일어나는 일로 예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며, 이를 잊거나 피하기 위해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구약의 신자와 신약의 신자에게 죽음은 다른 의미라고 설명해주었다. 죽음은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 분에게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신은 들지 않는다. 너무 어려웠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 역시 안다. 이 앎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라지는 가장 큰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철학과 종교와 신앙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죽는다. 왜 살아야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인에게는 죽음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지워주신 것이다. 죽음으로 인간의 한계는 명확해진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는 사랑의 대상이 된다.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대리자가 된다. 성인과 성모님의 죽음은 우리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해야할 지 공경의 대상이 되며, 병자성사의 신비를 설명한다.



나에게 죽음은 이별이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무섭고, 두렵다.

그러나 이 역시도 선물인 것을. 죽기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이 주제파악을 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려는 인간을 사랑으로 받아주신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나를 지우고,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내어드리는 것이었다.

매번 기도서나 강론 말씀에서 들었던 이 단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삶에서 구현할 것인지 조금씩 알듯말듯하다. 



그분께서 신앙인에게 허락하신 생각들 속에 함께하심으로써 신앙인의 생각이 오롯이 그분의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P.100 - 5장, 죽음은 하느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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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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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는 방식도 가지가지구나 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전이기에 정독보다는 스르륵 책장을 넘기다 꽂히는 부분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질병으로 분류되는게 있는가하면 병으로까지는 취급되지 않는 종류의 공포나 불안도 많다

팝콘이 튀겨지는 모양새에 역겨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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