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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평점 :
많이 어렵다. 가톨릭 신자가 죽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책인데 어렵다.
죽음.
우리 인생에서 100% 확실하게 일어나는 일로 예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며, 이를 잊거나 피하기 위해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구약의 신자와 신약의 신자에게 죽음은 다른 의미라고 설명해주었다. 죽음은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 분에게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신은 들지 않는다. 너무 어려웠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 역시 안다. 이 앎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라지는 가장 큰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철학과 종교와 신앙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죽는다. 왜 살아야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인에게는 죽음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지워주신 것이다. 죽음으로 인간의 한계는 명확해진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는 사랑의 대상이 된다.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대리자가 된다. 성인과 성모님의 죽음은 우리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해야할 지 공경의 대상이 되며, 병자성사의 신비를 설명한다.
나에게 죽음은 이별이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무섭고, 두렵다.
그러나 이 역시도 선물인 것을. 죽기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이 주제파악을 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려는 인간을 사랑으로 받아주신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나를 지우고,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내어드리는 것이었다.
매번 기도서나 강론 말씀에서 들었던 이 단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삶에서 구현할 것인지 조금씩 알듯말듯하다.
그분께서 신앙인에게 허락하신 생각들 속에 함께하심으로써 신앙인의 생각이 오롯이 그분의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P.100 - 5장, 죽음은 하느님의 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