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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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과 산에 ‘미쳤나’ 봐요

<<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2022

서점에서 신간을 탐독할 때, 눈에 띄는 책 표지가 있다. 아마, ‘제임스 설터’의 책을 애독하는 독자는 ‘그의 신간이 나왔구나’ 하며 책을 집어 들 것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제임스 설터’의 책 표지는 그의 문체처럼 매혹적이다.

1925년생인 제임스 설터, 그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비행 중대장을 지냈다.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장편소설 <<사냥꾼들>>을 출간하면서 전업 작가가 됐다. <<스포츠와 여가>>,<<아메리칸 급행열차>> 등을 펴내며 미국 문학의 축복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장면을 묘사하는 세밀한 문장은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고독한 얼굴>> 또한, 남성들의 등반 세계와 알프스의 전경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설터는 알프스에서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조난 사고, 정상에 올라올 때의 고통은 싹 잊은 채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 남성적인 등반 세계의 명암을 그의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암벽등반을 위해 필요한 장비와 암벽을 타면서 겪는 고초, 갑자기 일어나는 자연 현상, 등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고독한 얼굴>>은 실존 인물 산악인 ‘게리 해밍’을 모델로 했고, ‘게리 해밍’의 친구들을 인터뷰하고 편지글을 읽으며 구상하고 썼다.

“산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고독한 얼굴>>, 주인공 랜드. 그는 군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스물대여섯 살 된 사내다. 그는 위험한 등반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기꺼이 등반에 경의를 표하고 은밀한 기쁨을 누리는, 거만하지도 수줍어하지도 않는 산악인이다. 하지만, 그는 나약한 한 남성이고, 산에서 또는 생(生)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젊은 남성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영어 원제 Solo faces의 의미와 소설 마지막에 그려지는 랜드와 캐벗의 브로맨스, 설경의 알프스, 암벽등반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Solo faces, 고독한 얼굴

“벵엔, 1월 24일. 당국은 어제 아이거에서 900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한 23세 영국 산악인의 신원을 오늘 확인했다”(163)

알프스의 빙벽, 아이거 봉. 아이거봉은 높이 3,970m 그랑조라스, 마터호른과 함께 알프스 3대 봉우리다. 북벽엔 1,800m나 되는 대규모 철벽이 형성되어 있다. 1936년 7월 20일 토니 커츠 등 4명의 대원이 아이거 봉 북벽 등반을 도전했다. 아이거 봉을 오르던 사람들은 떨어져 죽거나 얼어 죽었고 살아온 사람은 오르지 못했다. 아이거 봉에는 시신이 오랫동안 기괴하게 암벽에 남아 있었고, 등반을 잠시 금지하는 조치도 있었다. 이후 1938년에 첫 등정이 이루어졌다.

“브레이는 크랙의 옆면에 몸을 딱 붙이고 있었다. 그곳에 자기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한 장의 사진에 불과한 존재인 듯한” (156)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 교 목사인 Paul Tillich)

책의 표지에는 한 남자가 로프에 매달려 있다. 브레이의 외로운 죽음을 암시한다.

외로움, 버려진 느낌. 그는 추위를 이기고 아침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없다는 것을 안다. 냉기가 온몸으로 들어오고 고통스럽다. 손마디와 감각이 무뎌지고 사라졌다. 빙벽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 그는 운이 좋아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남으려고 싸웠다. 그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추락하여 죽고 훼손된 몸으로 발견되었다.

“항상 가장 먼저 나서는 것이, 앞장서는 것이 운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삶에 자신감이 넘치다. 그런 사람은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최초의 인간이다.” (188)

랜드는 동료 브레이가 훼손된 몸으로 죽고 난 이후 홀로 등반을 시작한다. 브레이의 죽음이 랜드에게 산과 삶에 대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목숨을 건 산행이 시작된다.

등정은 용기가 기본 덕목이지만 용기 이상의 고독함. 고독함을 즐기는 얼굴이 필요하다. ‘고독한 얼굴’에서 나오는 인내, 산과 삶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등정을 위한 영감. 이것은 ‘미쳐야 한다’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있고,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하나뿐인 목숨까지 걸고 무모하게 던지는 것이다. 산 정상에서의 달콤함은 단 순간뿐이다. 정상 아래로 내려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게 산을 등정하는 매력이다. 소위 산에 ‘미친 것’이다.

Solo faces, 외로운 얼굴

주인공 랜드는 멕시코 여자, 루이즈와 동거하고 있다. 그는 통나무 장작을 패서 겨울을 나기 충분할 만큼의 장작을 만들어놓고 홀로 집을 떠난다. 그는 프랑스로 넘어간다. 그곳에서 카트린, 콜레트, 시몬 등의 많은 여성을 만난다. 여자들과 가벼운 잠자리도 함께한다.

카트린은 랜드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랜드는 카트린이 아이를 출산하지 않도록 요청했지만, 그녀는 과거 남자친구 비강을 다시 만나 아이를 낳는다.

소설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여자를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이다. 랜드의 여자관계는 너무 가볍다. 그는 성적인 욕구만 채운다. 특히, 콜레트의 부재로 친구 시몬과의 육체적 관계는 동물적 욕구를 해소하기에 급급하다. 그는 한순간 키스를 하다가도, 다음 순간 다른 데 마음이 가고 있었다.

소설에서 여성은 남성의 감각적 쾌락을 충족하고 욕구를 배설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의 가벼운 여성 인식의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재하다. 랜드의 ‘외로움’을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는 외로운 존재이다. 그의 여성 편력은 가볍게 외로움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의 사랑은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고 가볍다. 암묵적으로 그는 외로우면 “잠자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랜드의 여성편력은 그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외로움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다.

인생, 두려워 말고, 견뎌내!

“나에게 걸어와! 잭, 자넨 해냈어. 자넨 걸을 수 있어!”(263)

캐벗은 추락사고로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의 의지력은 유난히 강했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결국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하반신 마비가 된 캐벗은 휠체어를 타며 “내가 죽음을 맞이할 방이지” 하며 웃으면서 캐벗을 맞이했다.

캐벗은 겉으로는 유쾌해 보였지만,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캐벗은 권총 자살을 계획할 정도로 생을 지속할 의지는 점점 바닥 나고 있었다. 어느 새벽,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랜드가 캐벗에게 총구를 겨누며 캐벗에게 휠체어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걸어오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랜드는 숫자를 ‘1부터 10’ 까지 큰 소리로 외쳤다. 캐벗은 휠체어에서 일어날 의지를 보이며,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캐벗은 일어나지 못했다. 랜드가 겨눈 총알은 캐벗 주변의 벽에 구멍을 냈다. 둘 중 한 명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캐벗이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서려는 장면은 캐벗의 생을 이어나가고 싶은 의지를 반영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세상의 진정한 본질은 삶의 의지이며,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다. 여기서 맹목적인 삶의 의지란 ‘살고 싶고, 번식하고 싶은 아주 본능적인 욕구’를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맹목적인 삶의 의지를 경계했다.

랜드는 휠체어에 기대 사는 캐벗과 만난 후 죽음을 잠시 갈망했다. 그는 이미 살아보았던 어떤 삶도 다시 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아니다. 그의 생각은 폴라 제라드에게 말하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견디는 거예요. 두려워 하지 말고.”(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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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생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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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쓰기는 철학적이고 문학적 재료를 개인으로 연결시킨다. 그의 사유는 지적 미메시스를 가능케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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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
구소은 지음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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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느꼈다. 지금까지 겉 멋만 잔뜩 든 독서만 했다는 것을. <검은모래>의 경험은 작은 <아리랑>이었다. 주먹을 쥐면서 <아리랑>을 읽었다면 <검은모래>는 두 손을 모으면서 읽었다. 읽기를 한국소설로 방향 전환하게 만든 감정의 서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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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 히로세 다카시 평화소설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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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연대
<체르노빌의 아이들>, 히로세 다카시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9 With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김은혜 옮김, 새잎, 2020 <체르노빌>, HBO, 2019

1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황홀했다! 봄의 초원에 꽃이 폈고, 숲의 녹음은 부드러웠으며 봄 향기를 내뿜었다. 모든 것이 되살아나고, 자라며 노래하며.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름아움과 두려움의 어울림이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서 두려움을 구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반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대였다. 죽음의 낯선 얼굴이었다(203).<체르노빌의 목소리> 체르노빌의 봄과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6분 이후로 일상의 시계는 멈추었다. 이후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로 피폭된 사람, 그들의 아이, 미래의 태어날 생명 모두 피폭 이전의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체르노빌레츠(원전 사고로 피폭된 사람)’로의 삶을 시작 하였다. 삶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고, 그들에게 변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고통뿐이었다. 5월이면 장미꽃이 만발했던 프리프야트에서 장미꽃 향이 가득한 정원을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삶과 자연의관객이 되었다. 르포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원전 피폭 이후 일상이 멈춰버린 체르노빌레츠의 이야기이고, 무기력하게 우리의 삶이 국가에 의해 짓밟힌 이야기이다.

2
“거짓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미국 HBO의 5부작 <체르노빌>의 첫 대사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거짓의 대가를 ‘체르노빌레츠’라는 용어로 알 수 있다. 누가 거짓을 말하는가. 누가 거짓을 믿었는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국가주의와 국가를 너무 믿어 벌어진 하나의 전체주의적 사고의 인재이다. ”발전소는 (중략) 착실히 진화작업을 진행중이라는 연락이 왔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길 바랍니다. 이곳에서 되돌아간 결사대원들은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임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54) 국가는 온 힘을 다해 여러분을 도울 것이니, 앞일에 대한 불안일랑 떨쳐 버리고 당국의 지시대로 따라 줄 것을 거듭 당부하는 바입니다.(70) 사고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조지 오웰의 <1984>의 닮음꼴이었다. 소설은 전체주의의 어리석음을 고발한다. 소설 속에서는 오브라이언을 통해 “당이 진실이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이고,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서는 실제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소비에트 연방은 공산당에 의해 국가 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들이 선전하는 것이 사실이었고 당원들은 믿었다. ”텔레비전을 켜니 고르바초프가 국민을 안심시키는 중이었다. (중략) 나는 믿었다. (중략) 우리는 믿는 데 익숙했다. (중략) 그게 당의 기강이었고, 나는 공산당원이기 때문이었다.(중략) 이런 믿음이 깨지면 많은 이들이 뇌졸중에 걸리거나 자살을 한다. 학자 레가소프처럼 심장에 총알을 박는다.“(279) 시민들은 국가를 믿었다. 원전 사고로 소방관과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그들이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믿었다. 평화적 핵이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시민들은 정부에서 반복하는 ‘안전하다’라는 말을 믿었다. 사고 후에 맞이하는 메이데이를 경축함으로써 지금의 공포를 잊고자 노력했다“(143) 그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바이오로봇(인간)이 되어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핵을 삽으로 퍼는’ 기이한 일을 하였고, 국가는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리고 원전 사태가 해결되어 가고 있다며 거짓 선동을 하였다. ”푸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하라고 하니 해야 되는 것이었다. 조국이 부르고 조국이 명령했다. 우리는 그런 민족이다“(270) 타냐가 말한 정말 이상한 나라였다. 공개 정책이라는 말을 전 세계에 선전하면서도 뒤로는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독일 한 사회학자는 출판 계획을 앞당겼다. 그는 21세기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명명한 ‘울리히 벡’이다. 그가 책의 제목으로 삼은 위험사회란 위험이 중심으로 작용하는 사회이며 위험을 결정하기 위해 늘 점검해야 하는 사회다. 다가올 미래는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위험은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평준화가 되고 있어 “부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위험사회의 인자와 배경으로서 윤리성을 상실한 과학기술과 금용자본, 무절제한 환경 파괴, 억압당한 개인과 집단의 반발, 정보사회의 위험성 등을 지적했다. 21세기의 위험은 ‘danger’가 아니라 ‘risk’다.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가항력 재난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인 환경과 결합되어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위험을 ‘생산된 위험’, 생산된 불확실성‘이라고 불렀다. 과학과 기술발전, 환경훼손, 경제사회 발전에 따른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이거나, 별 위험이 아니지만 그 대처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이 개입해 재앙이 되고 마는, ’인위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무리한 원전 가동으로 인한 원자로 폭발로 일어난 ’인위적인 위험‘이다. 원전사고 당시의 당직자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생산한 위험이다. 그토록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은 인간의 잘못이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 대한 대책으로 ’성찰적 근대‘를 말한다. 성찰적 근대란 위험을 포함한 모든 준비를 국가와 전문가만 독점하지 말고 시민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 해결에 동참하는 사회다. 지식과 과학기술 전 과정을 시민이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위험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정부와 시민과의 성실한 소통이다. 우리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에서 발표하는 정보를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에 따라 행동하여야 한다. 단, 정보제공은 거짓이 아닌 사실에 기반한 진실이어야 한다. 거짓의 대가는 참혹했다.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간에 어떤 위험을 참아낼 수 있는가, 어떤 위험을 우선 관리할 것인가’ 하는 합의를 도출하고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 해야한다. 진실의 대가는 최소한의 피해와 안전한 사회이다.

3
모든 일은 바로 저 폭발 때문에 생긴 거야. 그래, 난 절대 잊지 않겠어. 모든 것을 다 기억할 거야.(72) 이반 세로프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겠다고 한다. “원전 부근의 자연은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었고 체르노빌레츠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인재(人災)로 인한 사고는 당시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통해 기억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고 앞으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대형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은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후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피해자 실태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사회불안을 낳고, 개인의 상처는 트라우마가 된다. “증언하고 싶다. 내 딸은 체르노빌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됐다고, 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고 한다.(중략) 적어두었으면 한다. 당신들이라도 적어두었으면” <체르노빌의 목소리> 사건이 발생한 초기 국가권력에 의한 거짓 선동으로 체르노빌에서는 방사능 피폭이 있었다. 방사능 피폭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피폭된 주민, 현장에 투입된 인력, 과학자를 통해 이 사건의 참혹한 실상을 기록하고 보존했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재검토와 피해가 발생된 지역과 주민을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보존의 힘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사고의 기억과 기록이 보존되어야 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부서져 버린 이루진 못한 꿈을 기억하게 하는 사건이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대형 선박이 침몰한다. 이 사건으로 304명의 희생이 생겼고 그날 이후 그들의 꿈과 삶은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 사건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 국가형 인재(人災)이다. 4월 16일 오전 10시 31분 세월호는 완전히 전복된다. 최초 사고 신고는 오전 8시 52분. 9시 30분 해경 헬기가 도착하고 주변 어선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선체가 침몰하기까지 1시간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배에 탑승해 있던 304명의 단원고 학생과 승객들은 구조되지 못했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학생들을 안에 남겨두고, 그들만 탈출했다. 해경은 하선 유도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총력을 다해 주조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지휘체계도, 책임도 사라진 현장에서 모두 우왕좌왕하며 손을 놓고 있었다. 그날 국민들이 목격한 것은 국가 시스템의 몰락이자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가 가치의 붕괴였다. 우리는 세월호 현장의 장면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 기억을 누군가 지우려 했고, 지우려 할수록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세상을 휩쓸었다. 상처는 상처대로 곪아 가고, 기억은 더 생생해 졌다. 사회는 잊을려고 했고 회복과 치유과정은 없었다. 모두가 아팠고 세상은 진실을 외면해 갔다. "흔적이 사라지면 기억에서 멀어집니다. 잊혀지는 순간 참사는 반복됩니다.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교실을 보존해야 합니다." <경기도 교육청 앞 피켓 中> 사건을 기억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사건은 되풀이된다. 생생하고 절실하게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록하고 보존 되어야 한다. “적어 두세요.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이해 못했지만 그렇게라도 남겨두세요. 누군가 읽고 이해하겠죠. 나중에, 우리가 죽은 후에.”(13) “기억도 우리가 사는 만큼 살 것이오(318) <체르노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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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진실을 파헤쳤던 핵물리학자 레가소프.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거짓을 계속 듣다 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에 대한 일말의 희망마저 버리고 지어낸 이야기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체르노빌> HBO. 이 둘은 거짓의 위험성을 알린다. 거짓을 알기 위해서는 사실과 진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실(fact)과 진실(true)은 같은 것인가?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럼, 언론이 보도하는 건 다 사실인가, 진실인가, 아니면 거기에 가까운 것인가? “내 딸은 체르노빌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우리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됐다고, 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고 한다.”(69) <체르노빌의 목소리> “이곳에서 내 이름은 이반 세로프가 아니고 미콜라 네드바이로래. 명부에 가짜 이름으로 씌어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날 만나려면 미콜라네드바이로를 찾아야 하는 거야. 정말 지독한 놈들이야” (130)
국어사전은 ‘사실’에 대해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정의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3호기 원자로 화재는 사실이다. 사고 당일 당직자 중 책임자 다를로프는 죽는 순간까지 본인의 잘못으로 원자로가 폭발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고가 난 이후 핵물리학자 레가소프는 원자로의 폭파된 원인을 분석한다. 원인은 사고 발생 당일, 당직자의 무리한 원자로 가동이었다. 사실 뒤의 진실이 레가소프에 의해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진실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거짓 없는 사실‘이다. 사실은 참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즈는 “명확한 사실만큼 기만적인 것은 없다” 어떤 사건이나 사안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판단해선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사실과 진실은 동일하지 않다. 사고 난 후 고르바초프는 TV 연설에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무들,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냥 불이에요, 불. 걱정할거 없습니다. 아직 거기서 사람이 살면서 일하고 있어요.”(251)<체르노빌의 목소리> 국가를 신뢰해 달라고 했다. 언론에 나온 고르바초프의 말은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거짓이었다. 국가는 질병에 대한 모든 자료가 ‘기밀’ 또는 ‘고급 기밀’이라는 도장 아래 감추었다. 의학과 학문을 정치로 끌어들여 진실을 보는 눈을 잃도록 했다. 진실이 점점 피해 당사자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사실은 이미 무수히 존재했지만 사실 아닌 거짓이 존재했다. ‘사실이 밝혀진다’란 말은 쓰이지 않는다. 밝혀지는 건 사실이 아닌 진실이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체르노빌 사고는 진신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우리가 대적 해야 할 것은 진실이다. 진실을 위해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5
이 작품은 수난이나 비극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신체적 어려움을 딛고 살아갈 의욕을 다지게 된다. “이네사, 어깨를 꽉 잡아, 그래도 정 걷기 힘들면..아냐, 당장 내 등에 업혀. 이반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이네사를 등에 업었다. 이반은 바람과 개울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네사는 등에 업힌 채 오빠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서 방향을 가르쳐 주었고, 타냐는 아들의 오른팔을 꼭 잡은 채 따라가고 있었다.”(96) 눈이 먼 이반이 다리가 불편한 이네사를 업고 가는 모습은 체르노빌의 아이들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특히, 이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서로의 신체적 불편함을 채워가며 힘들지만 원전에 피폭된 위태로운 현실을 조심스럽게 건너가는 것이다. 앞으로 체르노빌의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삶의 모습을 예견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과정이 험난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사실에서 아이들의 삶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힘을 합하여 이 고난을 개척해 나갈지도 모른다. 체르노빌 아이들의 행복은 그 의미가 국가의 힘에 의해 규제된다. 국가가 앗아간 개인의 행복. 개인의 행복을 돌려줘야 한다, 국가의 구성은 사람이 함께하기에.


“아이들이 체르노빌을 그렸어. 그림 속 나무는 뿌리가 하늘을 향해있어. 강이 빨간색 아니면 노란색이야. 그렇게 그려 놓고 울었어 (298) <체르노빌의 목소리> “먼저 나온 아이들이 산다고 나간게 아니라 아이들 끌어올려주고 먼저 나온 아이들이 밀어주고 질서 지키면서 나와서 누구 한명 나올 때까지 계속 이름 부르고 그랬어요”<세월호 생존 아이의 증언> 4월은 봄을 여는 계절이자 T.S. 엘리엇이 노래한 잔인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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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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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원인이 가해자에게 있든 자신에게 있든 상관없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머릿속에 트라우마 기억이 우세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곳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면 자연스레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장소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라 해도 마찬가지다.”(139) 트라우마를 경험한 환자는 트라우마를 흘러가는 현재의 삶과 결합 시키지 못한다. 끔찍한 기억에 계속 머무른 채, 어떻게 해야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현실감을 잃은 그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정서적 뇌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트라우마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저자는 눈으로 보아왔다. 그들에게 현재를 온전하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간을 트라우마를 연구하면서 경험한 환자의 사례와 트라우마 치유 기억을 기록했다. 또한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현대 뇌과학 및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가진 즐거움과 창의성, 의미, 유대감 등 인생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요소의 원천을 트라우마를 통해 탐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은 뇌, 몸, 마음에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을 이 책을 통해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사회적 사건과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잊고 싶은 기억,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되살려할 기억이 있다. 3년 전 제주 4·3사건 현장에서 오늘 되살려내야 할 기억과 치유해야 할 기억을 들었다.
해방 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자 하는 제주도민의 열망은 한반도의 어느곳 보다 높았다. 그 열망이 제주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1947년 3·1절 행사가 관덕정에서 치러진다. 행사 직후 군인들에 의해 민간인이 총살되고 이로 인해 민중의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주의 4월은 제주전역의 붉은 빛깔로 만들었고 제주도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만들었다.
4·3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 들어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 사건 이후, 제주도민들은 제주도민 이외의 사람들은 지칭해 ‘육지것들’이라고 한다. ‘육지것들’은 과거 4·3 사건의 역사적 트라우마로 인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육지사람들’에게 대한 경계심과 기피증,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난다.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도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고 있지만 완전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서 4·3관련 사료나 학살 장소, 위령비에 대한 왜곡이나 거짓은 아직도 버젓이 역사적 사실로 보여지고 있다. ‘육지것들’에 대한 불신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 4·3 생존희생자와 유가족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을 설치고 약에 의존한 생활이 벌써 73년째다. 제주도는 2015년 제주 4·3 생존 희생자 101명과 와 유가족 1011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진행했다. 4·3세대가 점차 줄어들면서 생존희생자들의 정신건강 조사가 서둘러 이뤄지고 희생자들의 트라우마가 도민들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됐다.
외상후 스트레스(PTST) 장애증상검사 결과, 생존 희생자 중 39.1%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고위험군이었다. 일반 상태의 안정군은 2.7%에 불과했다. 유가족의 경우도 중등도 위험군 이상이 52%로 절반을 넘었다.
제주시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몸과 마음의 치료와 사회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 4·3 트라우마센터를 20년도에 설립했다. 트라우마센터는 그들을 치유하고 사회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책에서 이야기하는 치유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다. 마음챙김, 요가,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등 역사적이고 집단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 중 이었다.
저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역할을 주목했다. “나는 1996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신부가 개최한 ‘진실과 화해위원회’공청회에서 집단 리듬의 힘을 목격했다.”(576) “이들의 노력은 ‘우분투’라는 핵심 원칙을 바탕으로 삼는다.(중략) 즉 ‘내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특성이 당신의 인간적인 특성과 불가피하게 결합된 상태’라는 의미다. 우리 인간이 지닌 공통의 인간성과 공통의 운명을 인지하지 않고는 진정한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여기에 담겨 있다“(602)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사례는 제주 4·3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 집단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례이다.

2

“아이들은 법정에서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어른들입니다.” 호통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판사의 말이다. 천 판사는 법정에서 비행청소년을 꾸짖고 청소년에게 참교육을 하는 판사이다. 법정에서 본 아이들을 보면 70%는 저소득층, 47% 결손가정이다. 경제적, 가족사적 이유로 유년기부터 부모님과의 애착 형성이 어려웠다. “혼란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공격적이거나, 멍하니 있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의학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혼란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공격적이거나, 멍하니 있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의학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216)
“생후 18개월에 엄마와 나누는 정서적 의사소통이 심각하게 파괴된 양상을 보였던 아이들은 불안정한 자기의식과 스스로를 해치는 충동(과도한 소비, 난잡한 성생활, 물질 남용, 무모한 운전 습관, 폭식 등)과 부적절하고 강렬한 분노, 반복되는 자살 행동에 시달리는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220)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이 아이의 성장에 있어 중요하다. 천종호 판사의 말씀처럼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어른이다.
소년범죄의 원인은 가정해체와 애착손상으로 인해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대부분이다. “양육자는 먹이고, 입히고, 혼란스러워할 때 다독여 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뇌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을 형성시켜 준다는 사실이 밝혔졌다. 양육자와의 상호관계는 무엇이 안전하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려 주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우리를 실망시킬 사람을 알아보게 하며,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이러한 정보는 뇌 회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저장되어 있고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의 틀을 형성한다.”(234,235)
애착 손상이 있는 청소년은 원초적 불안·불신감 때문에 성숙한 자아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다. 애착손상은 부모의 이혼 등 가정해체로 인한 정서적 유대감 결핍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 성장하는 뇌는 애착손상으로 인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그릇되게 되어 아이는 피해의식이 커지고 주변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이에게 안전한 안식처가 제공되면 독립성이 증대되고 공감할 줄 알고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명확히 증명되었다.”(205)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서 활동한다. 그는 보호 소년 축구단, 사법형 그룹홈, 통통 캠프 운영 등 청소년들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사법형 그룹홈은 2010년 11월 창원에서 시작된 제도로 사법부의 일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대안 가정이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자라는 취지에서 만든 ‘청소년 회복지원시설’로 청소년들을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개별적으로 보살펴 재비행을 막는다. 시설에서 자신의 생명력과 살아가려는 의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유하겠다는 의지와 만약 트라우마가 있다면 완전히 없애려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한다. 그리고 비행청소년들이 비행에서 벗어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지원을 아낌없이 했으면 한다.


3

올해 시립미술관에서 2012년 퓰리쳐상을 받은 사진을 한 장을 우두커니 서서 본 적이 있다. 크레이그 F.워커의 ‘WELCOME HOME’으로 한 남성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두운 배경으로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의 남성 이름은 스캇 오스트롬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용사이다. 그는 전후 외상스트레스성 질환(PTSD)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오스트롬은 PTSD로 인해 공황장애, 사회적 관계의 단절, 자살 충동을 겪으며 힘들어했다. 이라크에서 겪은 악몽 같은 일들이 머릿속에 남아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는 중이었다. 그는 이라크에서 했던 일들과 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더는 전쟁의 정당성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가진기자 크레이그 워커에게 말했다. “저는 잔인한 살인자였습니다. 이를 즐기기까지 했어요. 지금 저는 다시 인간답게 생각하고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자 워커는 “전쟁의 영향은 참전 용사와 그 가족을 넘어 지역 사회와 세대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참전용사의 현실은 반드시 전해져야만 하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저자 또한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 주고 이해해 주는 기분을 느끼면 몸의 생리 상태가 변화하고, 복잡한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 알아주는 기분을 느끼면 뇌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아아“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도 생긴다. (403)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며 ”자신이 느낀 공포를 인식하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자신이 인류 집단의 한 일원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집단 치료를 실시하면서 만난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전장에서 목격하고 자행한 잔혹한 일들을 서로 공유한 후에야 여자친구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었다고 애기했다(406)
스캇 오스트롬과 베트남 참전 군인 사례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회복으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4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신이 내 손에 지우개를 쥐여 준다면, 그래서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혹시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어디를 지울까. (중략) 그 순간을 증오한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날, 아버지의 뾰족한 고드름 같은 눈빛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시점을 지우고 싶다. 구멍이 나도록 세게 문질러 지우고 싶다.”P233 <파란방>, 구소은
소설가 구소은의 <파란방>의 주오의 ‘잔인한 사랑’을 시작하는 부분이다. 주오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형외과 의사가 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그가 선택한 아내와 결혼했으나 아이가 없다. 트라우마로 생긴 임포텐스 때문이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으면 남들처럼 달콤한 연애를 했을 것이고 아이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그 트라우마가 바뀌지 않고 바꿀 수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구조가 형성되며, 새로운 만남이나 경험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오염되고 만다.”(106) 주오는 트라우마가 생긴 이후 가족에 대한 증오로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을 하고 본인 집안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그의 임포텐스는 그릇된 성적 욕구로 표출된다. 아내에게는 자위를, 접대부에게도 본인의 성적 대리만족을 요구한다. 트라우마가 증오와 분노로 변질되어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주오가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지운다면 중학생 때 생긴 트라우마이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에는 이전과 다른 신경계로 세상을 경험한다. 트라우마 치료에 반드시 대상의 모든 부분, 즉 몸, 마음, 뇌가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106) 트라우마는 주오의 몸, 마음, 뇌를 지배하고 증오와 분노심을 불태웠다. 만약 주오가 증오와 분노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는 회복에너지로 전환했으면 어땠을까.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자기 중심의 사고에서 주변 사람들의 일에 관심 갖는 법을 배우고, 트라우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 치료했으면 가족과 아내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없었을 것이다.
“회복의 핵심은 자각이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구는 ”그 점을 인식하라“와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심장이 부서지고 배 속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참을 수 없는 느낌과 가슴을 조여 오는 감각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을 느끼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하면 그 감각에 쉽게 제압되는 확률만 높아진다.“ (361) 자신의 감각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친해진다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현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주오는 트라우마를 자각하고 회복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5

저자는 정신적 외상을 발생시키는 스트레스에 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중, 당시 새로운 분야로 여겨지던 신경과학이라면 내 의문을 어느 정도 해고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당시 ACNP(미국신경정신약리학회)에서 가장 깊이 감명받는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마틴 셀리버그먼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던 마이어 박사의 발표이다. ”주제는 동물에게 나타나는 무기력감이었다. 그와 셀리그먼 박사는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에게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반복해서 가하고 그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충격’으로 명명했다.”(71)
우리에 갇힌 상태에서 몇 차례 전기 충격을 가한 후, 연구진은 우리 문을 열고 다시 충격을 가했다. 앞서 전기 충격을 당한 적 없는 대조근 개들은 충격이 가해지자마자 얼른 달아났지만,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당했던 개들은 충격이 가해지자마자 얼른 달아났지만,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당했던 개들은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달아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낑낑대고 배변을 했다. 단순히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 동물이나 사람이 자유를 찾아가지 않는다.”(71) 이 실험에서 개들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역시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위험이 따를지도 모르는 새로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 익숙한 두려움에 갇혀 있으려 하는 것이다.”(71)
책에서 인용한 펜실베니아 마틴 셀리그먼 교수와 콜로라도대학교의 스티븐 마이어 교수의 발표 중 ‘피할 수 없는 충격’으로 명명하여 트라우마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경험했다고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를 하며 어느 한 기업에서 모의 면접을 본적이 있다. 면접관은 기업 인사팀장이었는데 지원자인 나의 이력서를 보고 압박 면접을 진행했다. “당신의 학점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올 생각을 어찌 했나요?”,“당신의 학벌로 우리 기업이 만만해 보입니까?” 하며 압박을 해 왔다. 나는 2가지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나왔다. 면접 이후, 위 2가지 질문은 지금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면접을 준비할 때 꼭 2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의 학점과 학벌은 자격지심으로 변했다. 회사나 사적 모임에서 ‘나’보다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보면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학벌이 높은 상대와의 대화를 기피하게 되고 만남 자체를 꺼려했다. 점점 컴플렉스로 변해갔다. 책 속의 환자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성장 중심의 학습과 업무 역량을 쌓아갔다. 직장에서 성과를 내는 직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덤이었다. 나는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외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회복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다는 견해를 제기한다. 긍정심리학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트라우마는 외상 후 장애가 아니라 외상 후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한다.” 셀리그만 교수는 오랫동안 ‘학습된 무력감’에 관해 연구했다. ‘학습된 무력감’이란 어떤 충격을 받은 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벗어나려는 의지를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의 ‘피할 수 없는 충격’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대부분 사람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셀리그만 교수는 과거의 충격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외상 후 성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초점을 앞에 놓인 우울이나 불안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이후 다가올 회복의 순간에 둬야 한다”고 했다. 트라우마는 미래를 방해하는 감정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하고 성장의 요체로 발판 삼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언어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규정하고 이해해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트라우마는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새로운 삶의 원칙을 만들어 준다. 회복탄력성, 즉 회복력이 큰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더 발전적인 원칙을 만들어낸다. 긍정적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
사람들이 정신적 외상을 남긴 과거의 잔재에 대한 통제력을 쥐고 자기 자신이라는 배의 선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현재를 즐기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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