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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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원인이 가해자에게 있든 자신에게 있든 상관없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머릿속에 트라우마 기억이 우세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곳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면 자연스레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장소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한 곳이라 해도 마찬가지다.”(139) 트라우마를 경험한 환자는 트라우마를 흘러가는 현재의 삶과 결합 시키지 못한다. 끔찍한 기억에 계속 머무른 채, 어떻게 해야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현실감을 잃은 그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정서적 뇌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트라우마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저자는 눈으로 보아왔다. 그들에게 현재를 온전하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간을 트라우마를 연구하면서 경험한 환자의 사례와 트라우마 치유 기억을 기록했다. 또한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현대 뇌과학 및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가진 즐거움과 창의성, 의미, 유대감 등 인생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요소의 원천을 트라우마를 통해 탐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은 뇌, 몸, 마음에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을 이 책을 통해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사회적 사건과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잊고 싶은 기억,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되살려할 기억이 있다. 3년 전 제주 4·3사건 현장에서 오늘 되살려내야 할 기억과 치유해야 할 기억을 들었다.
해방 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자 하는 제주도민의 열망은 한반도의 어느곳 보다 높았다. 그 열망이 제주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1947년 3·1절 행사가 관덕정에서 치러진다. 행사 직후 군인들에 의해 민간인이 총살되고 이로 인해 민중의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주의 4월은 제주전역의 붉은 빛깔로 만들었고 제주도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만들었다.
4·3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 들어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 사건 이후, 제주도민들은 제주도민 이외의 사람들은 지칭해 ‘육지것들’이라고 한다. ‘육지것들’은 과거 4·3 사건의 역사적 트라우마로 인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육지사람들’에게 대한 경계심과 기피증,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난다.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도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고 있지만 완전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서 4·3관련 사료나 학살 장소, 위령비에 대한 왜곡이나 거짓은 아직도 버젓이 역사적 사실로 보여지고 있다. ‘육지것들’에 대한 불신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 4·3 생존희생자와 유가족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을 설치고 약에 의존한 생활이 벌써 73년째다. 제주도는 2015년 제주 4·3 생존 희생자 101명과 와 유가족 1011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진행했다. 4·3세대가 점차 줄어들면서 생존희생자들의 정신건강 조사가 서둘러 이뤄지고 희생자들의 트라우마가 도민들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됐다.
외상후 스트레스(PTST) 장애증상검사 결과, 생존 희생자 중 39.1%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고위험군이었다. 일반 상태의 안정군은 2.7%에 불과했다. 유가족의 경우도 중등도 위험군 이상이 52%로 절반을 넘었다.
제주시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몸과 마음의 치료와 사회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 4·3 트라우마센터를 20년도에 설립했다. 트라우마센터는 그들을 치유하고 사회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책에서 이야기하는 치유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다. 마음챙김, 요가,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등 역사적이고 집단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 중 이었다.
저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역할을 주목했다. “나는 1996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신부가 개최한 ‘진실과 화해위원회’공청회에서 집단 리듬의 힘을 목격했다.”(576) “이들의 노력은 ‘우분투’라는 핵심 원칙을 바탕으로 삼는다.(중략) 즉 ‘내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특성이 당신의 인간적인 특성과 불가피하게 결합된 상태’라는 의미다. 우리 인간이 지닌 공통의 인간성과 공통의 운명을 인지하지 않고는 진정한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여기에 담겨 있다“(602)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사례는 제주 4·3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 집단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례이다.

2

“아이들은 법정에서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어른들입니다.” 호통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판사의 말이다. 천 판사는 법정에서 비행청소년을 꾸짖고 청소년에게 참교육을 하는 판사이다. 법정에서 본 아이들을 보면 70%는 저소득층, 47% 결손가정이다. 경제적, 가족사적 이유로 유년기부터 부모님과의 애착 형성이 어려웠다. “혼란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공격적이거나, 멍하니 있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의학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혼란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공격적이거나, 멍하니 있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의학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216)
“생후 18개월에 엄마와 나누는 정서적 의사소통이 심각하게 파괴된 양상을 보였던 아이들은 불안정한 자기의식과 스스로를 해치는 충동(과도한 소비, 난잡한 성생활, 물질 남용, 무모한 운전 습관, 폭식 등)과 부적절하고 강렬한 분노, 반복되는 자살 행동에 시달리는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220)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이 아이의 성장에 있어 중요하다. 천종호 판사의 말씀처럼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바로 어른이다.
소년범죄의 원인은 가정해체와 애착손상으로 인해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대부분이다. “양육자는 먹이고, 입히고, 혼란스러워할 때 다독여 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뇌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을 형성시켜 준다는 사실이 밝혔졌다. 양육자와의 상호관계는 무엇이 안전하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려 주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우리를 실망시킬 사람을 알아보게 하며,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이러한 정보는 뇌 회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저장되어 있고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의 틀을 형성한다.”(234,235)
애착 손상이 있는 청소년은 원초적 불안·불신감 때문에 성숙한 자아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다. 애착손상은 부모의 이혼 등 가정해체로 인한 정서적 유대감 결핍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 성장하는 뇌는 애착손상으로 인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그릇되게 되어 아이는 피해의식이 커지고 주변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이에게 안전한 안식처가 제공되면 독립성이 증대되고 공감할 줄 알고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명확히 증명되었다.”(205)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서 활동한다. 그는 보호 소년 축구단, 사법형 그룹홈, 통통 캠프 운영 등 청소년들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사법형 그룹홈은 2010년 11월 창원에서 시작된 제도로 사법부의 일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대안 가정이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자라는 취지에서 만든 ‘청소년 회복지원시설’로 청소년들을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개별적으로 보살펴 재비행을 막는다. 시설에서 자신의 생명력과 살아가려는 의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유하겠다는 의지와 만약 트라우마가 있다면 완전히 없애려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한다. 그리고 비행청소년들이 비행에서 벗어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지원을 아낌없이 했으면 한다.


3

올해 시립미술관에서 2012년 퓰리쳐상을 받은 사진을 한 장을 우두커니 서서 본 적이 있다. 크레이그 F.워커의 ‘WELCOME HOME’으로 한 남성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두운 배경으로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의 남성 이름은 스캇 오스트롬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용사이다. 그는 전후 외상스트레스성 질환(PTSD)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오스트롬은 PTSD로 인해 공황장애, 사회적 관계의 단절, 자살 충동을 겪으며 힘들어했다. 이라크에서 겪은 악몽 같은 일들이 머릿속에 남아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는 중이었다. 그는 이라크에서 했던 일들과 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더는 전쟁의 정당성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가진기자 크레이그 워커에게 말했다. “저는 잔인한 살인자였습니다. 이를 즐기기까지 했어요. 지금 저는 다시 인간답게 생각하고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자 워커는 “전쟁의 영향은 참전 용사와 그 가족을 넘어 지역 사회와 세대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참전용사의 현실은 반드시 전해져야만 하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저자 또한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 주고 이해해 주는 기분을 느끼면 몸의 생리 상태가 변화하고, 복잡한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 알아주는 기분을 느끼면 뇌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아아“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도 생긴다. (403)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며 ”자신이 느낀 공포를 인식하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자신이 인류 집단의 한 일원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집단 치료를 실시하면서 만난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전장에서 목격하고 자행한 잔혹한 일들을 서로 공유한 후에야 여자친구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었다고 애기했다(406)
스캇 오스트롬과 베트남 참전 군인 사례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회복으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4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신이 내 손에 지우개를 쥐여 준다면, 그래서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혹시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어디를 지울까. (중략) 그 순간을 증오한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날, 아버지의 뾰족한 고드름 같은 눈빛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시점을 지우고 싶다. 구멍이 나도록 세게 문질러 지우고 싶다.”P233 <파란방>, 구소은
소설가 구소은의 <파란방>의 주오의 ‘잔인한 사랑’을 시작하는 부분이다. 주오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형외과 의사가 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그가 선택한 아내와 결혼했으나 아이가 없다. 트라우마로 생긴 임포텐스 때문이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으면 남들처럼 달콤한 연애를 했을 것이고 아이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그 트라우마가 바뀌지 않고 바꿀 수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구조가 형성되며, 새로운 만남이나 경험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오염되고 만다.”(106) 주오는 트라우마가 생긴 이후 가족에 대한 증오로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을 하고 본인 집안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그의 임포텐스는 그릇된 성적 욕구로 표출된다. 아내에게는 자위를, 접대부에게도 본인의 성적 대리만족을 요구한다. 트라우마가 증오와 분노로 변질되어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주오가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지운다면 중학생 때 생긴 트라우마이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에는 이전과 다른 신경계로 세상을 경험한다. 트라우마 치료에 반드시 대상의 모든 부분, 즉 몸, 마음, 뇌가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106) 트라우마는 주오의 몸, 마음, 뇌를 지배하고 증오와 분노심을 불태웠다. 만약 주오가 증오와 분노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는 회복에너지로 전환했으면 어땠을까.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자기 중심의 사고에서 주변 사람들의 일에 관심 갖는 법을 배우고, 트라우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 치료했으면 가족과 아내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없었을 것이다.
“회복의 핵심은 자각이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구는 ”그 점을 인식하라“와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심장이 부서지고 배 속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참을 수 없는 느낌과 가슴을 조여 오는 감각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을 느끼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하면 그 감각에 쉽게 제압되는 확률만 높아진다.“ (361) 자신의 감각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친해진다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현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주오는 트라우마를 자각하고 회복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5

저자는 정신적 외상을 발생시키는 스트레스에 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중, 당시 새로운 분야로 여겨지던 신경과학이라면 내 의문을 어느 정도 해고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당시 ACNP(미국신경정신약리학회)에서 가장 깊이 감명받는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마틴 셀리버그먼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던 마이어 박사의 발표이다. ”주제는 동물에게 나타나는 무기력감이었다. 그와 셀리그먼 박사는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에게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반복해서 가하고 그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충격’으로 명명했다.”(71)
우리에 갇힌 상태에서 몇 차례 전기 충격을 가한 후, 연구진은 우리 문을 열고 다시 충격을 가했다. 앞서 전기 충격을 당한 적 없는 대조근 개들은 충격이 가해지자마자 얼른 달아났지만,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당했던 개들은 충격이 가해지자마자 얼른 달아났지만,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당했던 개들은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달아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낑낑대고 배변을 했다. 단순히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 동물이나 사람이 자유를 찾아가지 않는다.”(71) 이 실험에서 개들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역시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위험이 따를지도 모르는 새로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 익숙한 두려움에 갇혀 있으려 하는 것이다.”(71)
책에서 인용한 펜실베니아 마틴 셀리그먼 교수와 콜로라도대학교의 스티븐 마이어 교수의 발표 중 ‘피할 수 없는 충격’으로 명명하여 트라우마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경험했다고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를 하며 어느 한 기업에서 모의 면접을 본적이 있다. 면접관은 기업 인사팀장이었는데 지원자인 나의 이력서를 보고 압박 면접을 진행했다. “당신의 학점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올 생각을 어찌 했나요?”,“당신의 학벌로 우리 기업이 만만해 보입니까?” 하며 압박을 해 왔다. 나는 2가지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나왔다. 면접 이후, 위 2가지 질문은 지금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면접을 준비할 때 꼭 2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의 학점과 학벌은 자격지심으로 변했다. 회사나 사적 모임에서 ‘나’보다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보면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학벌이 높은 상대와의 대화를 기피하게 되고 만남 자체를 꺼려했다. 점점 컴플렉스로 변해갔다. 책 속의 환자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성장 중심의 학습과 업무 역량을 쌓아갔다. 직장에서 성과를 내는 직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덤이었다. 나는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외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회복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다는 견해를 제기한다. 긍정심리학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트라우마는 외상 후 장애가 아니라 외상 후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한다.” 셀리그만 교수는 오랫동안 ‘학습된 무력감’에 관해 연구했다. ‘학습된 무력감’이란 어떤 충격을 받은 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벗어나려는 의지를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의 ‘피할 수 없는 충격’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대부분 사람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셀리그만 교수는 과거의 충격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외상 후 성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초점을 앞에 놓인 우울이나 불안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이후 다가올 회복의 순간에 둬야 한다”고 했다. 트라우마는 미래를 방해하는 감정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하고 성장의 요체로 발판 삼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언어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규정하고 이해해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트라우마는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새로운 삶의 원칙을 만들어 준다. 회복탄력성, 즉 회복력이 큰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더 발전적인 원칙을 만들어낸다. 긍정적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
사람들이 정신적 외상을 남긴 과거의 잔재에 대한 통제력을 쥐고 자기 자신이라는 배의 선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현재를 즐기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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