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적 책이나 TV에서 보았던 '청춘'은

화창한 캠퍼스에서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하하 호호 웃는 것.

혹은 멋진곳에서 기깔나게 일에 집중하는 모습들이었다.

못할 것 없고 언제나 용기있고 당당하게

"제가 하겠습니다~!"를 외치는 서두르긴 해도 서툴진 않은 모습들.

 

 누구나 알듯 실제 청춘이라 불리우는 20대 시절은

어쩌면 한 개인에게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기 보다는

가장 구질구질하고 후줄근한 시절이 아닐 수 없다.

대학에 간다고 당장에 살이 빠지지도 않거니와

어느 날 내 앞에 뚝딱~! 하고 근사한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멋들어진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죙일 복사, 커피 심부름에 온갖잡무를 도맡아 하며

 선배들의 갈굼도 웃으면서 넘길 줄 알아야 일 잘하는 후배라는 소리를 듣는 시절.

 어쩌면 이런 사실은 '지구가 둥글다' 라는 보지도 못한 사실보다

 더 뼈에 사무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 길어졌지만 청춘은 절대 빛나는 시절이 아님을. 현실은 온통 남루함임을...

다른책에서도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었다. 내가 만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청춘의 문장들에서는 말하고 있다. 청춘은 남루한 것임을.

적어도 작가 자신의 청춘은 그랬노라고 담담히 말해준다.

 

 정릉 산동네기 꼭대기, 꼭 버스정류장옆 관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방에 살던 시절,

책 안읽은 이가 들어도 구질함이 느껴지는 이 시절이 청춘이었노라고

그때가 좋았노라고 말한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된다. 천만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잠시 아득해졌었다.

나의 청춘이었던 꽃피는 봄시절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도 작가 못지않게 구질구질했고 그래서 항상 그곳을 떠나고 싶어 했었고

 너무많이 남아 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누가 날좀 어디로 데려가 줬으면 그런생각도

 항상 했었다. 근데, 그 시절이 내인생의 봄이었구나. 작가 말대로 지나고 나니 알겠다.

누군가 다시 돌아가 보겠느냐고 물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그 지점.

그 땐 그게 왜 그렇게 죽을 것 같았는지. 막 벗어나서는 뒤돌아 보고 싶지도 않았었는데

한참을 지나고 나니 그 때가 제일 그립다.

 시절을 떠올리며 왜 떠나올때는 잊고만 싶었던 기억인데

한참을 지나고나도 잊지를 못할까 그랬었는데 .....

 어리고 좋았을 때라서? 아니었다. 가장 빛나는 시절이기 때문이라고 작가가 말해줬다.

 고맙다. 내 가장 아픈 시절을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고 말해주어서. 

 나만 그런게 아니고 작가 당신도 그랬다고 청춘이란 그런거라고 말해주어서.

 내 맘대로 알아들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자.

 

 어쩌면 나는 항상 벗어나고만 싶어 하는 것은 아닐지.

지금 아이를 키우며 빨리커라 빨리커라만 하는 것처럼.

지나고 나면 지금도 봄일텐데.

그러고 보면 나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은것 같다.

 

어쩌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으로만 갖고 있었을 수도 있던 시간들을,

내가 사실은 아직도 청춘이고 봄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새벽에 남편과 아이가 잘때 화장실에서 가글하며 읽다가  

즐겁되 음란하지 말며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말자 에선 입에 있던걸 다 뿜어냈었다.

그리고 사실은 아직도 가끔 그 생각하며 한번씩 실실 웃는 중.

지나가다 그런사람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ㅋㅋ

 

빌려온 책을 쓸어보다가

아 이건 사야겠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와서 샀는데 정말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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