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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평점 :
#레몬케이크의특별한슬픔
아프지만 소중한 현실을 눈여겨보게 만드는 마술적이고 아름다운 속삭임
지난 겨울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를 읽고,
소설가 이도우 님이 머릿 속에 남아있었던 참에
이 책 뒷 표지에 있는 이도우 님의 평을 보고
더욱 궁금해져서 읽게 된 소설이다.
제목만 먼저 보고 '레몬 케이크에 어떤 슬픔이 있을까?' 를 떠올리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작가는 물론이고, 옮긴 이의 노력도 함께 보이는 듯했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상황 묘사와 감정 표현이
소설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한다.
내용은 궁금해서 빨리 읽어내려가고 싶은데
한 문장 한 문장 놓치고 싶지 않아서 머릿 속에
더 촘촘하게 그려보며 기억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
아홉 살 생일에 엄마에게 부탁해서 먹게 된
레몬향 반죽의 따뜻한 케이크에서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맛.
p.20 분명 초콜릿 맛이었지만, 그 맛이 퍼지며 흔적을 남기는 동안 동시에 내 입안에 가득 차는 것은, 하찮음과 위축된, 화가 난 느낌의 맛, 어쨌든 엄마와 연관이 있는 듯한 거리감의 맛, 엄마의 복잡한 소용돌이 같은 생각의 맛이었다.
로즈는 그 후로 모든 음식에서 만든 사람의 감정을 아주 정확하게 느끼기 시작하는데,
이 능력으로 인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던 아이.
이해받고 싶었지만 특별한 능력에 대해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과
이 놀라운 능력을 이용하려는 주변인들 사이에서 스스로 버텨내야만 했는데..
소설이지만 매일 음식을 만드는 나도 읽으며 생각해 보았다.
냉동식품, 인스턴트 식품들도 사용하긴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에서는 과연 어떤 감정이 느껴질까?
기분이 좋아 정성을 다해 만들 때도 있고,
귀찮지만 의무감에 할 때도 있고,
아프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할 때도 있고,
엉뚱한 생각하며 습관처럼 할 때도 있을텐데...
식재료의 원산지에서부터 사람들의 손을 거쳐
요리한 사람의 감정까지 녹아든 음식의 맛이 상상이 되는가?
이걸 느껴지는대로 표현해내는 것도 참 놀랍다.
나도 왠지 당분간은 더 섬세하게 맛을 느껴보고 싶은 욕구가 가득 생기기도 했다.
우리들은 보통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으면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다른 뒷면은 대개 보질 못한다.
p.166 나는 이 상황이 싫었다. 이 모든 게 마치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오늘이,
너무나 평범한 내가,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우리 가족이,
그냥 감사한 순간이다.
소설 속 로즈네 가족은 서로 마음껏 보듬어주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상처내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내는데
그 중 가장 어린 로즈가 이들의 연결된 끈을 잡고 이끌어가는 느낌이었다.
봄날, 감각을 깨우며 색다른 소설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p181 기억, 화학물질, 그리고 의식 없는 마음. 마술을 만들어내는 삼총사입니다.
p382 그런 엄마가 우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은 엄마라는 존재가 고백할 수 있는 가장 초라한 말인 것 같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개인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