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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유전자 -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하여
요아힘 바우어 지음, 장윤경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평점 :

살아가는데 있어서 의식주가 어느 정도 채워지더라도 공허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가족이나 파트너가 있어도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이런 게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서적 공감이 부족한 경우에 이런 공허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게 줄어들수록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살면서 공허함을 간간히 느끼고 있는데 이런 공허함을 줄이는데 도움얻고자 하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내 개인적으로 생각난 영화가 있다. <데드풀 2>라고 코미디 액션영화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기 그지없는데, 내용은 코미디다. 사람이 너무 쉽게 죽이고, 우습게 죽는 게 아니냐는 내 개인적인 우려도 있지만, 그런 잔인함을 알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영화다. 2탄에서는 돌연변이 아이가 나오는데, 잠재적 범죄자이고, 나중에 커서 살인범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 데드풀은 처음에 이 삐뚤어진 아이를 공감하는 척 했다가, 아이가 그걸 눈치채고 상처받게 되어 더 삐뚤어지게 되어 사고를 치게 된다. 데드풀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사고치는 삐뚤어진 아이가 위험에 처하자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이의 목숨을 건진다. 아이는 데드풀이 위기에서 목숨걸고 자신을 구해준 걸 보면서 슬퍼한다. 영화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는데, 이 영화에서 여기에서 내 눈에 들어왔던 게 뭐냐면, 상대방의 입장을 비아냥거리지 않고, 진정으로 공감해주려고 한 것이 그 대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책을 보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지구온난화의 예시를 들고 있다. 예시를 들었다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38쪽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지구온난화의 경우, 이를 무시하고 부인하는 사람들은 주로 기후 변화에 해로운 자신의 사업을 방해받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고 싶거나, 계속해서 무절제하게 소비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 문장을 자신이 말한 게 아니라, 어떤 내용을 인용한 것이긴 한데, 이 인용은 내가 봤을 때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지구온난화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 그런 의문을 품은 사람을 악덕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주장이라서 <내 의견에 공감하고 찬성하면 천사, 그렇지 않으면 악마>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 사고로 나와 버리는 주장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식의 주장을 볼 때 어이가 없는데, 이 부분은 독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책을 보면 삶의 자세는 유전자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책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겠다. 혹여나 접종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내용을 참고해서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회복력이 다른 경우보다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책이든지 저자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맞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독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바가 100% 맞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독자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길러져 있다면, 이런 게 잘 보일 것이다. 반대로 저자의 생각이나 주장을 100% 맹종하면서 “그런가보다. 나도 책을 보니까, 책을 보면 지적으로 보이니까, 나도 지적인 사람으로 보일거야. 이 저자 말이 100% 맞을 거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살면서 깨달은 건데, 생각하는 힘은 스스로 기르는 것이며, 누가 길러주는 것이 아니다. 권위에 네네하면서 맹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언젠가 뒤통수 후려쳐 맞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부 공감한 부분도 있었지만, 일부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이 책 말고도 다른 책에서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이 책에 대한 내용을 보고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는 독자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도움될만한 내용들 위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고, 제 나름대로 솔직하게 쓴 주관적인 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