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발랄 유물 여행 - 유물로 보는 역사 한 장면 주제로 보는 어린이 한국사 시리즈 3
김경복 지음, 김숙경 그림 / 니케주니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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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역사#유쾌발랄 유물여행


 


 

유물속에 사연이 있다?

우리가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보았던 유물들이 각각에 사연이 있었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예요. 

역사적 흐름이 아닌 유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재미난 역사이야기 책이예요.

15점의 문화재마다 우리에게 어떻게 그 문화재들이 다가올수 있었는지 실제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재미나기도 하고 안타까운 점도 많고 화가 날때도 있어요.

우리가 박물관이나 역사여행지에서 그냥 지나치며 봤던 문화재들이 저런 사연이 있었구나

글을 보면서 알게되어 그 가치를 더욱 소중히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가 박물관을 가거나 유적지를 가기전에 먼저 배경지식을 쌓아두고 가면

그냥가서 보는 것과는 바라보는 시야가 틀린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서 다음에 아이들과 이 문화재들을 다시 접하게 될때는 좀 더 넓은 시야로 재미나게 유물들을 바라볼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반구대 암각화, 농경문 청동기,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서봉총 금관,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 무령왕릉과 지석, 백제 금동 대향로,

단양 신라 적성비, 충주 고구려비, 경천사 10층 석탑,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훈민정음 해례본, 천상열차분야지도, 대한 제국 고종 황제 어새


총 15점에 문화재가 소개되어 있는데 아이들과 직접 가서 보고온 유물들도 있고 처음 본 문화재도 있어요.


 


스웨덴 황태자가 발굴한 서봉총 금관

기생이 금관을 썼다?


신라금관을 쓴 기생 사진이 부산 일보에 실렸어요. 기생에게 금관을 씌우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요?

일제 강점기였던 1935년 9월, 평양 부립 박물관은 서봉총 출토 금관과 몇몇 장신구를 대여받아 특별 전시를 열었어요.

박물관장인 일본인 고고학자 고이즈미가 서봉총 금관을 발굴한 장본인이예요.

전시회가 끝나고 유물들이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기생에게 금관과 금제 허리띠,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차게 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고이즈미는 박물관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어요.

우리에 소중한 문화재가 어쩜 이런 수난을 겪게 되었는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막혀요.


금관은 경주시 한 마을에서 일꾼들이 일하다가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발견되었는데 이때 고이즈미 아키오가 현장으로 달려와 발굴작업을 했어요.

이때 일본에 있던 고분발굴에 관심이 많은 고고학자인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의 귀에 이 소식이 전해졌고

우리나라로 건너와 발굴 현장에 뛰어들었어요.

그는 고이즈미가 발굴한 금령총 금관보다 훨씬 큰 금관을 발굴했어요.

서봉총 이라는 이름은 당시 스웨덴을 한자로 서전이라고 썼는데 서전의 '서'자와 금관에 세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어 봉황의 '봉'자를 따서 지었다고 해요.


금관은 무게가 1킬로그램이 넘어서 매일 머리에 쓰고 다닐 수는 없었을거라고 해요.

실생활에 쓰던 것이 아니라 장례나 제사 등 의식을 치를 때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해요.


금관은 전 세계에 10여 개밖에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8개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고, 대부분이 신라 땅에서 발굴되었다고 해요.

이런 귀중한 금관이 기생에게 씌워지다니 나라에 힘이 없어 이런 일이 생겼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유물을 좀더 세심히 관찰, 연구하고 보수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유물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태도가 좀더 바꼇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석가탑에도 여러 사연이 있었네요.

불국사 대웅전에 있는 삼층 석탑인 무영탑이 무너질 위기에 있었는데 그 원인은 도굴꾼들이 탑 속에 사리함을 훔치기 위해

탑의 옥개석을 들어올리다가 벌어진 일이예요.

도굴꾼들은 처음 1층 옥개석을 들어 올렸는데 아무것도 없자 이틀 뒤 3층 옥개석을 들어 올렸지만 헛수고 였어요.

스님은 석가탑의 몸체를 이루는 돌인 탑신이 뒤틀린 것을 발견하고 신고했는데

용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용의자가 자신이 도굴한 구슬 300여 점과 비취 9개를 삼성 그룹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각에게 팔았고

통일 신라 시대 순금 불상 2점도 팔았다고 해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예요. 재벌가에서 도굴된 문화재를 사다니 이런 사건도 있었구나 알게 되었어요.


석가탑이 도굴되고 기울어진 석가탑을 다시 세우기로 결정했는데 해체 작업에서 3층 탑신이 해체되고, 2층 옥개석을 해체했을 때 그곳에 사리함과 경전 등이 들어있었다고 해요.

도굴꾼들이 유물을 찾기 위해 1층과 3층만 들어올렸는데 2층이 아니였던게 정말 다행이였어요.

우리 아이들도 정말 다행이라며 어쩜 그리도 잘 피해갔을까? 한편으로 다행이면서도 도굴꾼의 행동에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하지만 안타까운것은 해체 작업중 옥개석과 탑신이 깨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부처님의 사리를 담은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일어났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처리를 했길래 유리병이 깨졌는지 정말 책을 들여다 볼수록 문화재를 다루는 우리나라에 태도가 너무나 한심한것 같아 화가나요.

그 후 석가탑은 2012년 9월에 다시 복원 작업이 사작되어 2016년 5월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해요.

석가탑에는 정말 무수한 사연이 있었네요.


 


아이들과 함께 백제의 유적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녀왔던 공주에서 무령왕릉을 다녀왔었어요.

정말 책으로만 들여다 보다가 직접 체험을 해보니 아이들이 사진을 보면 나 여기 다녀왔는데, 우리가 봤던 유물이야 하면서 더 좋아하더라구요.

공주를 가기전 무령왕릉에 대해서 자료찾아 읽어보고 그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도 읽어보며 방문하니 더 이해도가 높았어요.

우리가 경험했던 무령왕릉과 지석을 읽으니 아이들도 더 흥미로워 해요.


벡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 만들어진 왕과 귀족들의 무덤

무령왕릉은 백제25대 임금 무령왕의 무덤인데 하루만에 발굴작업이 끝난 안타까운 무덤이예요.

발군단은 신문 기자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무덤 안의 모습을 사진 찍을 수 있게 허락했고 다음날 오전에 발굴작업을 끝냈어요. 

몇 달이나 몇 년에 걸쳐 해야 할 발굴을 17시간 만에 끝내다니.

왜 발굴단은 그들을 저지하지 못했고 그들을 막을 힘도 없었을까 하는 그들의 문화재를 다루는 태도가 아쉬웠어요.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계 최고의 발굴이지만 최약의 발굴로 기록되었다고 해요.

 


아이들과 국립중앙박물관을 갖다왔을때 박물관 1층에 우뚝 세워져 있는 석탑을 봤었어요.

웅장한 크기에 놀랐었거든요.

정말 높이가 어머어마하게 높아 한참을 들여다 봤었는데 2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탑이 계속 보였어요.

대리석으로 만든 탑이 였는데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지 글을 보고 알았어요.


일본의 대신 다나카 미스야키라는 사람이 경천사에 가서 10층 석탑을 떼어 내어 도쿄에 있는 자신의 집 정원으로 옮겼어요.

해외 언론에서 야만적인 문화재 약탈이라는 비판 기사가 실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비난을 사자, 국제 사회 여론을 신경썼던 일본은 11년 만에 돌려주었어요.

돌아온 탑은 경복궁 뜰에 40년 동안 방치되다가, 복원 작업에 들어가 국립 중앙 박물관 실내로 옮겨졌다고 해요.


우리나라 석탑은 대부분 화강함으로 만들어졌는데 경천사 10층 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어요.

원나라 장인이 만들었고, 3,5,7,9층의 홀수로 세워진 우리탑과는 달리 짝수인 10층이예요.

아래 기단부에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가 새겨져 있고,

1층부터 10층까지는 부처님이 설법하는 모습과 수행모습 합장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우리나라 전통과 외래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룬 석탑이라고 해요.

가서 보았을때는 이런 의미가 담긴 줄 몰랐었는데 다음에 다시 국립 중앙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면

많은 수난을 겪은 경천사 10층 석탑을 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


 


간송 전형필 선생은 어린이신문에서 보게되어 알게 되었어요.

이 책에서 보게되니 반갑더라구요.

서울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일제 강점기하에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빠져나가는 것이 안타까워 전 재산을 쏟아부어 우리에 문화재를 지키신 분이예요.

당시 경성(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이 1천 원이었는데 기와집 20채 값 2만 원을 주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구입했어요.

간송은 성북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빛나는 보물을 모아 둔 집)을 개원했는데

지금은 아들들이 간송 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유지하고 있어요.

한국 전쟁 중 피난길에서도 품 안에 넣고 지킨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가 얼마나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아꼈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아요.

문화의 힘으로 조국을 지켜 내고자 노력했던 간송의 마음이 담긴 간송 미술관이 영원히 잘 관리되기를 바라봅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도 많은 사연이 담겨 있더라구요.

문화재 전시회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는데 오전에 정전이 되어 불이 다시 들어왔는데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 사라져 버렸어요.

범인은 메모에 오늘 밤 12시까지 돌려준다고 하며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순금인 줄 알고 훔쳤는데 그렇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금불상을 돌려주겠다며 찾아가라고 전화가 왔어요.

12시간 만에 도난당한 불상을 찾았다고 해요.


이 불상은 경상남도 마을 주민이 아들과 돌밭에서 자갈을 추리다가 커다란 판석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금빛 불상이 빛나고 있었다고 해요.

불상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자 경찰이 조사하겠다며 가져갔는데

한 경찰이 정말 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불상을 손에 놓쳐 광배에 금이 가고 말았대요.

어떻게 문화재를 이리 소홀히 대할 수 있는지 정말 화가나더라구요.

문화재 위원회는 불상을 발견한 주민에게 2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는데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가장 많은 보상금이라고 해요.

아이들은 문화재가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얼마를 보상해 주는지 궁금해 하더라구요.

만약 너희들이 문화재를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할건지, 얼마 보상받고 싶은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어요.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이란 연가 7년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청동위에 금을 입혀서 만든 부처님이 서 있는 모습의 조각이란 뜻이래요.

이름이 너무 길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뜻도 알게 되었어요.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빛을 보지 못한 유물들이 땅속에서 잠자고 있을지도 몰라요.

문화의 힘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에 수고가 헛되지 않게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나라에 힘이 없으면 역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배웠어요.

문화재 하나하나마다 많은 사연이 담긴 유쾌발랄 유물 여행 아이들과 유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재미난 시간이었어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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