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문장들 - 7년 차 카피라이터의 방향이 되어준 메모
오하림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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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러분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이 있는가? 문장이 아니라면 외우고 있는 명언 같은 거라도 좋다. 아마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떠오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이 한 말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머리가 띵해지는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지금껏 여러 매체에서 얻은 문장들을 기록한다. 책의 표지 속 서로 다른 길이의 직선이 눈에 띈다. 마치 여러 개의 직선들이 문장의 길이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 제목이 세로로 길게 적혀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책의 표지 자체가 노트 속 한 장의 메모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카피라이터로 20살 때부터 문장을 모으는 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자신이 적어 놓은 문장을 혼자 보기 아까워 자신의 생일에 문장을 엮어 책의 형태로 제본해 친구들에게 선물한 점이 이어져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목차는 크게 세 가지 챕터로 나눠져 있다. 숫자로 목차를 표시하지 않고 각 주제에 맞는 문장으로 목차를 구분해 놓았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말해주는 문장''나를 끄덕이게 한 문장', '나를 생각에 빠지게 만든 문장'으로 나눠져 있다. 큰 목차 안에는 소제목이 달린 각각의 문장들이 소개된다. 문장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에 걸맞은 소제목이 나온다. 소제목을 통해 어떤 문장을 소개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문장들은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나 명언들이라기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SNS에서, 택시 안처럼 평범한 순간 속에서 발견한 찰나의 문장들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다양한 순간 속 빛을 발하는 문장들을 포착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문장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전달한다. 나는 소제목 '부끄러워야 할 민낯은 어느 쪽일까?'의 배우 임수정의 인스타그램 속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개그맨 유재석이 '놀면 뭐 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이 아닌 '유산슬', '유섹', '유드래곤'이라는 부캐가 있는 것처럼 임수정 배우님도 인간 '임수정'과 부캐와도 같은 배우 '임수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SNS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임수정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어색할지 몰라도 그 모습이 인간 '임수정'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모든 걸 판단하려 한다. 자신들만의 틀을 세워 그 틀에 맞춰 규격화하려 한다. 좀처럼 자연스럽게 살기 힘든 세상에서 임수정 님은 자연스러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표현한다. 원래도 임수정 님을 좋아했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어서 더 좋아졌다. 내 몸은 내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있듯이 임수정 님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멋있는 분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뜻밖의 문장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저자에게 이보다 딱 맞는 직업이 있으랴. 저자가 모은 문장들은 그렇게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다고 저자가 수집한 문장이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처사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들을 읽어본다는 건 색다른 의미가 있다. 하나의 문장을 수집하는 데 그만큼 많은 문장을 봤을 것이고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명한 문장들이 아닌 색다른 문장들을 원한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될 수 있다면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 그어가며 읽어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적어도 한 개 이상은 얻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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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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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태어난 게 범죄라는 책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러분은 책 제목을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나는 보자마자 태어난 게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조그만 세상에서 탄생이 범죄인 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하루가 넘게 걸리는 남아공이란 나라에서 탄생은 범죄였다. 탄생이 범죄였던 그곳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트레버 노아'이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인종 간 성관계를 법으로 금지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TV 쇼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불과 3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새로운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로서 그의 촌철살인은 미국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의 목차가 나오기 전에 배덕 법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결코 녹록지 않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트레버 노아는 자신의 인생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달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 못지않게 저자의 어머니인 '놈부이셀로 노아'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어린 시절은 온통 어머니와 함께였으니 말이다. 독일계 스위스인인 저자의 아버지 '로버트'는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일뿐 전적으로 어머니 혼자 트레버를 키웠다. 트레버의 어머니가 자신과 닮은 아이를 갖길 원했고 '트레버 노아'가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트레버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들로 가득하다. 격렬한 논쟁의 장면에도, 폭력을 피해 버스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도, 총을 맞아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에도 모두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어머니는 트레버에게 이런 말을 한다. "과거를 슬퍼하지는 마라.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라고 하며 자신의 아들은 결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였고 저자는 그러한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저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피부색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영어뿐만 아니라 아프리칸스어, 코사어, 독일어 등등 여러 언어를 배워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법을 빠르게 터득한다. 저자가 언어를 배워 자신의 무기로 만들었듯이 그를 둘러싼 외부의 고통은 결코 그를 넘어뜨릴 수 없었다.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꼽자면 바로 제1부의 에피소드 3편인 '기도하렴, 트레버' 편이었다. 어린 시절 저자가 살던 집의 화장실은 옥외에 위치했는데 비가 오는 날, 똥이 너무 마렵던 5살의 트레버는 옥외 화장실이 너무나 싫어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변을 본 것이다. 변을 보고 조심스럽게 변을 본 봉투를 싸서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집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할머니와 엄마가 쓰레기통을 뒤져보니 대변이 떡하니 있는 것이었다. 집안에 모르는 사람의 똥이 있다는 건 할머니와 엄마에게는 악마의 짓이었고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똥을 불태워야만 했다. 트레버는 자신의 똥을 보며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기도한다. 옥외 화장실이 무섭던 트레버도 이해가 되고,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독자인 나는 이 에피소드에서 웃음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 에피소드 외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웃기지만 슬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일명 웃픈 이야기들 말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또 내가 저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는 게 신기했다. 저자의 이야기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는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덧나기 마련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게 제때 반창고를 붙여줘야 한다. 저자는 상처를 덧나게 놔두지 않는다. 유머로 상처 부위에 반창고를 덧댄다. 그에게 유머란 상처를 치료해 주는 반창고인 셈이다. 저자의 유머는 삶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해 준다. 상처를 일부러 없애지도 않는다. 상처받았다면 반창고를 붙여 치료해 주면 그만인 것이다. 저자를 통해 상처를 응시하고 제대로 치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저자처럼 상처를 제때에 제대로 치료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덮어 놓고 눈 가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상처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라도 상처를 제대로 응시하고 반창고를 덧대려 한다. 아무리 아픈 상처라 할지라도 제대로 치료한다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삶의 상처 입은 이들에게,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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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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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님의 신작!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 출간된다.

 

출간 전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평단에 당첨되어 전체 도서의 2/3부분까지 실려 있는 가제본 도서를 읽게 되었다.

 

현성이네가 작년 겨울 비닐하우스로 된 '양지 화원'이라고 쓰인 집에 이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양지 화원'이 위치한 땅은 시에서 추진하는 도로 정비 사업으로 인해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이주 보상을 받는 땅이다. '현성'의 삼촌은 '양지 화원'을 샀는데 삼촌의 말에 따르면 이듬해 봄이면 이주 보상금이 지급되니 이 땅을 사두면 남는 장사라고 하며 현성의 아빠에게 땅을 판다. 현성네 가족은 이주 보상금을 받아 아파트를 살 계획으로 서울의 전세금까지 빼며 이사를 온다. 하지만 땅도, 이주 보상금도 모두 삼촌의 거짓말이었다. 삼촌의 거짓말로 현성네 가족은 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양지 화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겨울과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현성'은 엄마의 심부름으로 밀가루를 사러 마트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같은 반 친구인 '조장우'를 만나게 된다. '장우'도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사러 오게 되었다는 걸 알고 같은 날 같은 음식을 해먹는 재미있는 우연이라며 '장우'와 급격히 친해지게 된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현성'과 무언가가 많은 '장우''현성''양지 화원' 근처 비닐하우스들을 탐험하며 쓰레기 쌓인 꽃집을 발견하고 그 꽃집은 '현성''장우'의 아지트가 된다. 이 아지트에서 '장우'는 학원 숙제를 하기도 하고 '현성'은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며 놀게 된다. '현성''장우'의 권유로 유튜브를 찍게 되는데 동영상의 콘셉트가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기였다. 이 영상은 조회 수가 천을 넘게 되고,,, 현성이네 '양지 화원'은 철거를 하게 되어 이사를 가게 되는데,,,

 

(가제본 도서이다 보니 뒤에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2/3지점인 <4. 가만히 있어도 속상한 집>까지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 책은 현성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현성이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어른들에 의해 일어난다. 현성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현성이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맡게 된다. 더 이상 학원을 다닐 수 없게 되고, 차를 타고 마트를 갈 수도 없고, 따듯한 집에서 살 수도 없게 된다. 현성은 어른들에 의해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현성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모르는 것투성이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르니 말이다. 현성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복잡하고 모르는 것투성이인 세상이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현성이와는 정반대인 인물, 장우가 등장한다. 장우는 무언가가 많다. 물건도 많고, 학원도 많이 다니고 집도 많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너무 많다. 장우는 아빠와 둘이 산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한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으로 추정되고 아빠도 엄마와 이혼한 뒤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장우의 아빠와 새엄마는 결혼해 임신을 하게 되어 곧 장우는 배다른 동생이 생긴다. 현성의 시선에서 보는 장우는 그런 아이다. 뭐든지 많은 아이. 극과 극은 서로 같다는 말이 있던가. 그 말처럼 너무 없는 현성과 너무 많은 장우는 서로 통한다. 이 둘에게 없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진정한 어른이다. 그들을 진정으로 돌봐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현성의 부모님은 너무 없기 때문에 현성을 돌봐줄 수 없고, 장우의 부모님은 장우 외에도 신경 쓸 사람이 너무 많아 장우를 돌봐줄 수 없다.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게 된다. 그들이 만든 아지트는 우리 사회가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야 할 아지트가 아닐까. 아지트를 만들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게 되었다.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아이들의 세상이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일상을 풀어내는 현성이를 응원해 주고 싶다. 누가 봐도 현성이의 상황은 비극이다. 하지만 현성이는 이런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비관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하물며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지도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해탈한 사람처럼 말이다. 어찌 보면 현성이는 싫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데 어른들의 기준으로 현성이를 바라보기 때문에 불행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현성이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도 현성이와 같은 삶을 사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의 시선 밖에 존재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보여주어 책을 덮고 나서도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우리 집>이라는 영화다. <우리 집>도 현성이와 장우처럼 초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 책과 <우리 집> 영화를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추천한다. 지금까지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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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家族
김태영 지음 / 메이킹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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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트콤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노구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남이 왜 남이겠냐? 피가 안 섞인 사람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남이다."라는 말씀이다. 할아버지의 꼰대스러운 발언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대사였다. 가족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에세이 형식의 '가족'이라는 책이다.

표지 디자인이 눈에 띈다. 파란색 바탕 위에 가족이라는 한글과 한자가 눈에 띈다. 한자로 가족은 '집 가' 자에 '겨레 족'자를 합친 말이다. 저자인 김태영은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분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홀해진 가족들에게 인생에 한 번뿐인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너무 잊고 지낸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의미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의도처럼 이 책에는 저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있다.다섯 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목차인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에서는 저자의 가족인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를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인 '당신의 빈자리'에서는 저자의 곁을 떠난 가족들에 대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세 번째인 '가족의 마음'에서는 저자를 위한 가족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네 번째인 '<아마도 위로가 될 거야> 중에서'는 저자의 첫 번째 에세이인 <아마도 위로가 될 거야>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다섯 번째인 '가족 이야기'에서는 저자의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일화들이 소개된다.


에세이 형식의 글답게 어떤 특정한 형식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본 것, 체험한 것, 느낀 것 따위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를 들어 글의 처음 문장이 '어머니 당신의 두 번째 이름은 희생입니다'로 시작하는데 끝에도 똑같은 말이 적혀져 있어 읽을 때 약간 혼란스러웠다. 두 번이나 똑같은 말이 반복되어 어수선한 느낌을 받았다. 책 중간중간 글에 어울리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글과 함께 보기에 좋았고, 굵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적힌 문장들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저자가 가족을 생각하며 쓴 글들을 보며 나의 가족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나의 가족과는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은 모두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감정, 바로 사랑이다. 함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부모님은 우리 자식 어디 가서 고생하지는 않을까, 추운 날 떨고 있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하는 마음. 자식은 그런 부모님을 보며 내 걱정 말고 살기를, 부모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떤 모양이든 모두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뭉친 존재들이다.

삶에 치여 가족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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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성소은 지음, 최진영 그림 / 판미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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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의 한 구절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가사에 담아낸 나훈아의 노래는 코로나로 지친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이 2020년 현재에도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왜 이리 어려운지 나훈아 님은 이미 알고 계신듯하다. 나는 나로 살아간다. 나 자신으로 말이다. 그런데 나 자신을 아는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은 무엇일까.. 과연 나는 무엇인가. 나의 외적인 모습을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테스형의 가사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나 자신을 아는 일이 어렵지만 진정한 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은 살아가면서 모두가 한 번쯤은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처음인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침반과 지도일 것이다. 무턱대고 길을 떠나게 되면 길을 가는 도중 혼란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줄 책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이다. 책 제목 중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보인다. '십우도'라는 단어다. '십우도'란 한자로 '열십', '소 우', '그림 도'자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10장의 소 그림이라는 뜻이다. 목동이 소를 찾아 나서서 소를 발견하고 다시 사람들에게로 돌아오는 경험을 그리고 있다. 선불교에서 선 체험을 통해 참나를 찾는 과정을 소 찾는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십우도는 모두 동그란 원 안에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이런 경험이 모두 '지금 여기' 현실 세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독자는 이 열 장의 그림을 따라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된다.1단계부터 10단계까지 이어지는 십우도 여행 속 저자는 독자들에게 각 단계 별 나를 의식하고 참나를 찾으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해주는 책들을 소개한다. 책은 각 단계별로 2,3권을 추천해 준다. 소를 찾아 나서는 심우 단계에서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이 책의 저자인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가 추천 도서로 등장한다. 이 책을 볼 때 알아두면 좋을 점이 있다면 십우도의 단계를 천천히 이해한 뒤 각 단계에 맞는 책을 십우도의 그림과 매듭지어 생각해본다면 십우도를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1단계부터 천천히 따라가보자. '심우'로 일컫는 1단계는 제일 처음 밟는 단계로 스스로 부족함을 자각하고 지금의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집을 나서는 것이다. 이때 집을 나선다는 의미는 공간적인 의미라기보다 정신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한 마디로 지금의 안락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집을 떠나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모든 독자들은 이미 반이나 해낸 것이다'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이라는 책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 책 속의 책들은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지도의 역할을 한다. 이 책 속의 책들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십우도에 맞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어 책을 안 읽어본 독자라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십우도의 여정을 마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참된 나를 찾는 과정이 쉬울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 보면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 단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소를 찾아 나서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 독자는 드디어 소를 얻는 '득우'단계까지 오게 된다. '득우' 단계는 바로 소와 내가 하나가 되는 단계이다. 이 책의 중반부에 해당하는데 드디어 나와 하나가 되는 지점이 온 것이다. 그다음 단계부터는 하나 된 ''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된다. 그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에 다다르게 된다. '입전수수'란 저잣거리로 들어가 도움의 손을 드리우는 것이다. 모든 것 중의 최고는 사랑이라는 말처럼 진정한 나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면 자연히 내 주변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득우 단계에 소개된 책인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중 한 부분이다. 여러 좋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이 문장이 그중 가장 인상 깊어 서평에도 쓰게 되었다.'지금'이 가장 소중한 이유는 '지금'만이 우리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 존재하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현재인 '지금'이 인생이 펼쳐지는 공간이고, 변함없는 하나의 실재이다.그렇다. 우리는 지금을 사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을 살지 못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삶도, 고통에서의 놓여남도, 깨달음도, 행복도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있다. 나의 상황에 대입해보자면 나는 지금 취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다. 계속되는 코로나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난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금세 불안해진다. 미래의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을 살지 못하는데 다가오는 미래는 잘 살 수 있을까. 어차피 내가 미래를 생각한다 해도 내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며 살고자 노력하려고 한다. 내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할지, 뭐가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글이 잘 안 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서평을 쓰는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금 서평을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되니 머릿속 잡다한 생각들이 사라지며 이 순간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되면 보잘것없는 일이란 없고 쓸모없는 시간이란 없게 된다

"나는 어디쯤에 있나요?"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이제 소를 찾아 나서는 단계일까, 소를 얻은 단계, 아니면 사람도 소도 다 잊은 단계일까.

십우도 여행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우리는 보이는 것을 진짜라 생각하며 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보이는 것이 진정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눈에 비치는 돈, 여러 기준들과 수치들, , 아파트 같은 것들이 우리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고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다. , 아파트, 차 같은 것이 우리를 우리답게 보는 것을 가린다. 우리는 그렇게 눈이 먼 채 뭐가 진짜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나를 나답게 하고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양보, 배려, 친절, 사랑 같은 것들이 그 예다. 나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보일 것이다. 그렇게 의식을 가진 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떠나려는 모든 자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럼 이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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