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태어난 게 범죄라는 책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러분은 책 제목을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나는 보자마자 태어난 게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조그만 세상에서 탄생이 범죄인 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하루가 넘게 걸리는 남아공이란 나라에서 탄생은 범죄였다. 탄생이 범죄였던 그곳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트레버 노아'이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인종 간 성관계를 법으로 금지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TV 쇼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불과 3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새로운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로서 그의 촌철살인은 미국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의 목차가 나오기 전에 배덕 법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결코 녹록지 않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트레버 노아는 자신의 인생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달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 못지않게 저자의 어머니인 '놈부이셀로 노아'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어린 시절은 온통 어머니와 함께였으니 말이다. 독일계 스위스인인 저자의 아버지 '로버트'는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일뿐 전적으로 어머니 혼자 트레버를 키웠다. 트레버의 어머니가 자신과 닮은 아이를 갖길 원했고 '트레버 노아'가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트레버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들로 가득하다. 격렬한 논쟁의 장면에도, 폭력을 피해 버스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도, 총을 맞아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에도 모두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어머니는 트레버에게 이런 말을 한다. "과거를 슬퍼하지는 마라.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라고 하며 자신의 아들은 결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였고 저자는 그러한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저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피부색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영어뿐만 아니라 아프리칸스어, 코사어, 독일어 등등 여러 언어를 배워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법을 빠르게 터득한다. 저자가 언어를 배워 자신의 무기로 만들었듯이 그를 둘러싼 외부의 고통은 결코 그를 넘어뜨릴 수 없었다.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꼽자면 바로 제1부의 에피소드 3편인 '기도하렴, 트레버' 편이었다. 어린 시절 저자가 살던 집의 화장실은 옥외에 위치했는데 비가 오는 날, 똥이 너무 마렵던 5살의 트레버는 옥외 화장실이 너무나 싫어 마루에 신문지를 깔고 변을 본 것이다. 변을 보고 조심스럽게 변을 본 봉투를 싸서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집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할머니와 엄마가 쓰레기통을 뒤져보니 대변이 떡하니 있는 것이었다. 집안에 모르는 사람의 똥이 있다는 건 할머니와 엄마에게는 악마의 짓이었고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똥을 불태워야만 했다. 트레버는 자신의 똥을 보며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기도한다. 옥외 화장실이 무섭던 트레버도 이해가 되고,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독자인 나는 이 에피소드에서 웃음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 에피소드 외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웃기지만 슬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일명 웃픈 이야기들 말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또 내가 저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는 게 신기했다. 저자의 이야기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는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덧나기 마련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게 제때 반창고를 붙여줘야 한다. 저자는 상처를 덧나게 놔두지 않는다. 유머로 상처 부위에 반창고를 덧댄다. 그에게 유머란 상처를 치료해 주는 반창고인 셈이다. 저자의 유머는 삶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해 준다. 상처를 일부러 없애지도 않는다. 상처받았다면 반창고를 붙여 치료해 주면 그만인 것이다. 저자를 통해 상처를 응시하고 제대로 치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저자처럼 상처를 제때에 제대로 치료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덮어 놓고 눈 가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상처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라도 상처를 제대로 응시하고 반창고를 덧대려 한다. 아무리 아픈 상처라 할지라도 제대로 치료한다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삶의 상처 입은 이들에게,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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