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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라는 어필로 내게 다가온 책이다. 코지 미스터리가 무슨 의미인지 인터넷 서핑을 해보았더니, 유머러스한 추리 소설을 일컫는 일본식 표현이란다. 차리리 '요절복통 추리소설' 쯤으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쉽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홍간난 할머니와 그녀의 손녀이자 삼수생 반백수 강무순 양의 갑작스러운 동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릴적 할머니 댁에서 살았던 5살 강무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당시 마을의 사건들.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연히 찾아낸 비밀지도(?)와 문명으로부터 크게 동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우연찮게 밝혀지는 사건의 비밀들.
전적으로 강무순 양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의 머리 속을 있는 그대로 사족을 달 듯 글로 표현을 해놓았는데, 그 문체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읽는 이가 실제로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을 즐기게 된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글로 표현했다고나 할까.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경력에 의한 단순한 습관일까. 무튼 내가 이 책에 푹 빠지게 된 가장 큰 공신이다.
적당하게 챕터를 나누는 것도 좋다만, 챕터마다 붙여 놓은 소제목들이 기가 막히다. 이를테면, "부채질은 하다가 그만두면 더 더운 법이지" 같은? 챕터의 마지막을 읽고 나면 꼭 다시 앞으로 돌아가 소제목을 확인한다. 뜬구름 같기만 하던 소제목의 작거나 큰 의미를 알고 베시시 웃을 수 밖에 없다. 소제목 밑에 달린 조그마한 일러스트 역시 소소한 재미를 배가시킨다.
사건의 진행 역시 빠르다. 주인공의 사고를 그대로 함께 따라가게 되어서 그럴까. 뒷 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지는. 한 치 앞도 도무지 모르겠는. 유머러스한 전개 속에 감춰진 사건의 결말은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챕터 사이마다 2페이지 분량에 걸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 짤막한 이야기들이 모여 커다란 사건의 결말을 완성시켰던 것은 아닐까. 추리소설의 반전보다는 구성과 짜임을 중요시 여기는 나로서는 대만족한 작품이었다.
서두에서 아홉모랑이, 말우지고개 등,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산골 오지에 대한 설명이 길다. 스마트폰의 존재조차 모를 것만 같은 몸빼바지들의 향연을 연상케 하는 묘사들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단순히 산골 오지를 신나게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외부로부터 유입이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었고 고로 15년 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부로터 기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독자들에게 어디 한번 눈 앞의 진실을 찾아보라는 작가의 조롱 섞인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