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에 대하여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살면서 마주친 고양이는 많다. 길고양이, 기르는 고양이, 고양이 카페에서 만난 고양이, 위탁된 고양이, 버려진 고양이, 우리 집 담벼락에 종종 나타나는 고양이 등 내 눈을 끄는 고양이들을 만나왔다. 용기가 없어서 집으로 초청하진 못했다. 어쩌면 아직 한 번도 집사로 선택받지 못한 걸 수도 있고.
만남의 인연은 있지만 살 붙이며 같이 사는 인연은 없었기에 나에게 고양이는 늘 연구 대상이었다. 애석하게도 가까운 지인 중에 고양이 집사가 없어서 고양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 이야기를 담은 웹툰,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 종종 들러서 밥만 먹고 가는 고양이에 대한 에세이, 고양이를 떠나보낸 후의 이야기 등 고양이가 주제인 책은 비슷한 듯 달라서 읽는 재미가 있다.
산문집 <고양이에 대하여>의 작가 도리스 레싱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면서 여러 마리 고양이를 길러낸 집사이다. 나는 한 마리도 키우기 힘들어서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데 평생에 걸쳐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하며 그 새끼들까지 돌봤다니, 도리스 레싱은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따뜻한 시선이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고양이에 대하여>에는 도리스 레싱이 키운 여러 고양이들이 나온다. 모성애가 없는 회색 고양이, 모성애가 넘치는 검은 고양이, 병든 채 찾아온 오렌지색 길고양이 그리고 위풍당당한 모습의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고양이들은 태어나고 자라나고 길러지고 새끼를 배고 새끼를 낳고 키우고 늙어간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별다른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도리스 레싱의 세심한 관찰력으로 고양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이내믹한 사건들이 드러난다.
고양이들 간의 세력 다툼은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나면 늘 일어나는 일이었다. 우위에 있던 고양이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새로운 고양이가 아프다면 집사는 특별히 관심을 쏟게 된다. 그럴 때 원래 있던 고양이는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낸다고 도리스 레싱은 말한다. 도리스 레싱은 고양이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잡아내는 다정한 집사였다.
도리스 레싱은 고양이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며 고양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떠날 때까지 곁에 있었다. 그녀는 너무 많아진 새끼 고양이들을 없애야 할 때와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할 때는 고민과 죄책감과 고통이 가득했고, 고양이들이 건강해져서 아름다움을 뽐내며 돌아다닐 때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매력을 도리스 레싱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고양이 집사가 된다면 고양이 새끼를 처리하고 고양이가 병들었을 때 치료해 주고 고양이가 늙어갈 때 그 곁을 묵묵히 지켜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삶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고나 할까.
아직은 여건이 안 되어 고양이를 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고양이를 데려오게 된다면 여러 고양이 책들 중 도리스 레싱 작가의 <고양이에 대하여>가 생각날 듯하다. 사랑스러울 때뿐 아니라 힘들 때에도 고양이 곁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 책으로 말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이고 놀라운 즐거움을 맛보고,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는 삶.
손바닥에 느껴지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털, 추운 밤에 자다가 깼을 때 느껴지는 온기,
아주 평범하기 그지 없는 고양이조차 갖고 있는 우아함과 매력 (중략)
우리가 쓰다듬어주거나 턱을 만져주거나 머리를 살살 긁어주면
기분 좋게 목을 울리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