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빵과 크림빵과 곰보빵과 찹쌀떡과 도넛과 우유식빵에는 질리지 않았지만, 이 기레빠시에는 질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우리 형제가 기레빠시에 손을 대지 않게 되자, 상하기 직전의 기레빠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의 차지가 됐다. 강아지도 얼마간은 맛있게 먹었지만, 곧 기레빠시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다. 개들마저도 끝내는 알게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과하면 질리게 된다.

- 뉴욕 제과점 - P90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수술을 받은 뒤로 어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들 중에서 제일 훌륭한 것은 대학교 등록금이 아니라 그 웃음이라고 말하면 어머나는 서운해할까? 결국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에게서 등록금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정말 어머니는 돈을 주지 않았다. 대학 졸업 뒤, 한 해 동안 나는 여기저기 굉장히 많은 글을 썼는데, 번 돈이 전성기 때 뉴욕제과점 대목 장사는커녕 며칠 번 돈만큼도 되지 않았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 뉴욕 제과점 - P101

그리고 나는 더이상 고개를 들고 실내를 바라볼 수 없었다. 이윽고 국밥이 나왔고 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먹었다. 국밥은 따뜻했다. 나는 셈을 치른 뒤, 새시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역전 거리의 불빛들이 둥글게 아롱져 보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 뉴욕 제과점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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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알면서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고인에게도 그 목소리가 마냥 달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자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계속해서 요구를 들어준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외로웠던 예전으로 돌아가기 싫었을 뿐이다. 악마 같은 남자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사랑한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는 그 순간에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달콤함으로 고인은 힘겨운 삶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걸까. 그렇지만 그렇게 덧없이 흘려보낸 시간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

사는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연이 지나간다. 그만큼 우리는 다양한 관계의 형태와 빛깔을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관계에 쏟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다정함을 무례한 사람에게 낭비하지 말라고.

- 어리석은 사랑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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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과 마음, 그것은 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것이지 내가 아니다.
화낸 것은 내가 아니고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이 나로 행세한다.
본래의 나는 생기지 않았으니 없어지지도 않는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성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참나‘는 어떤 사람인가? 억누를 수 없는 나의 천성은 무엇일까?

- 나만의 특별한 내 일을 찾고 싶을 때 - P69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다비드상) 마침 근처를 지나던 어린 소녀가 물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돌을 두드리세요?"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
"꼬마야, 이 바위 안에는 천사가 들어 있단다. 나는 지금 잠자는 천사를 깨워 자유롭게 해주는 중이야."
미켈란젤로는 바위 안에 갇혀 있는 천사를 본 것이다. 차갑고 생명도 없는 대리석을 포근하고 감성이 풍부한 인간의 모습으로 경이롭게 조각한 것이 아니라 원래 대리석 안에 들어 있던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필요 없는 돌 조각을 쪼아낸 것이다.

- 나만의 특별한 내 일을 찾고 싶을 때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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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도 계절이 있다. 한 계절만 지속되지 않는다. 사계절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의욕을 품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있고, 눈부시게 성장할 때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꽃 같은 한때를 보내기도 하고, 실패에 좌절하기도 하고, 숨죽여 때를 기다릴 때도 있는 법이다. 인생은 굽이치고 이번 모퉁이를 지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눈 덮인 산과 꽁꽁 언 강만 보이는 겨울이라도 그 시간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찾아온다. 눈 덮인 땅속에서도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해 홀로 분주하다.
단단히 옷을 여미고 겨울을 버티고 나면 포근한 봄이 선뜻 다가오기도 하는 법이다. 곧 다가올 봄을 못 보고 가버린 고인이 못내 아쉽다.

- 겨울 다음 봄 - P132

점점 나빠지는 건강 상태도 느꼈을 테고, 다가오는 마지막도 예감했을 것이다. 예견된 죽음이었고,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다.
"사는 동안은사는 것처럼."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공간에서 고인은 제대로 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죽지만, 고인은적극적으로 죽음을 마중 나갔다. 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고, 기력도 없을 때가 있다는 걸.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정말 작은 일부터 해나갈 필요가 있다. 술을 사 먹을 기운이 있었다면, 쓰레기를 치울 기운 정도는 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이 조금만 정리돼도 기분이 달라진다. 다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태도의 전환도 일어난다.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삶의 의욕은 조금씩 회복되기도 하는 법이다.
딱 한 걸음만. 죽음으로 달려가지 말고, 딱 한 걸음만 삶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에 오늘도 애꿎은 술병에 길게 눈길을 보낸다.

- 죽음을 마중 나가지 말기를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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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식들의 빈자리에 찾아온 외로움을 술로 채우다가 돌아가셨다. 이제 자식들은 그와는 다른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엄마를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외로움을 말이다. 찾아갈 엄마 집이 없고 엄마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언제나 강하고 언제나 씩씩했던 엄마는 이제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고인은 그토록 소중했던 아이들의 마음에 그리움과 함께 그보다 더 큰 죄책감을 남기고 말았다.
행여 아픈 몸 때문에 짐이 될까 조심스러웠던 마음도 긴긴날 쓸쓸함을 이겨내려 마신 술도, 연락하면 혹여나 부담이될까 아이들의 흔적만 바라보던 아픈 배려도 내 눈에는 다 보였다.
떠난 고인도, 남겨진 자식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힐 듯이 안타까웠다. 누구도 그 끝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면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마음을 전할 일이다. 잘 있겠지 무턱대고 믿지 말고, 자주 연락하면 번거롭겠지 눈치 보지 말고.

- 여전히 사랑해, 엄마 - P45

문득 고인이 주워 온 의자가 생각났다. 쓸모가 없어져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고인에게는 그럴듯한 휴식처로 보였을것이다. 버려진 의자의 쓰임을 다시 찾아 고인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쓰임은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병이 재발했어도 의욕을 갖고 치료했으면 얼마든지 나을수 있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시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버려진 의자가 다시 의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처럼 새로운 삶을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인은 쓰임을 다했다고 절망했을까, 이제 자기 삶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사회가 정한 가치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좀 더 생각했다면, 술 대신 삶을 찾았다면 조금 덜 아프고 덜 외로웠을 텐데……

-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차이 - P102

절박한 생존의 이유가 아니라면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는 지역의 동물들은 오히려 평화롭고 체계적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내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화를 내는 걸까.
비단 사건 사고만이 아니라 고독사나 자살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발생한다.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상실감과 박탈감에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내가 가진 것에서 행복을 찾기를 거부하고 삶의 의지를 쉽게 놓아버린다.

- 우리가 화를 참지 못하는 이유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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