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는 학교에 다녔다. 십육 년이나 다녔다. 뭔가를 푸는 훈련을 하러 가서 시험 같은 걸 치고 얼마나 아는지 조사받았다. 분명히 뭔가를 풀 수 있으면 기쁘다. ‘아아, 그런가 하고 납득한 순간, 창창한 전망이 열린다는 걸 아는 것은 쾌락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앗, 알았다" 하고 기쁜 표정을 짓는다. "앗, 알았다"라고 신나서 외치는 이유는 온통 모르는 것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알게 된 것이 ‘사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알았다‘ 한 것도 머지않아 모르는 것 안에 섞이고 모르는것이 내려서 쌓여간다.

- 아이고, 잘 모르겠어요
오자와 다다시 《아기 돼지의 숨바꼭질》 해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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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른 길을 택한 배경에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라는 수련을 견디며 도달하려 했던 것을 버린 자신에 대한 냉철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우리가 빈약한 재능에 매달리는 사이, 그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가볍게 다른 길을 택했다.

- 좋아좋아, 그렇게만
모리 요코 《초대받지 못한 여자들》 해설 - P292

소설을 읽을 때 방해되는 현실의 상황은 가혹하다. 별장도 외국인 바와도 인연이 없는 나는 부엌만 하염없이 맴돌 뿐이었다.

- 좋아좋아, 그렇게만
모리 요코 《초대받지 못한 여자들》 해설 - P295

밍크 다이아몬드, 롤렉스 시계, 향수가 그녀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그 눈부신 화려함에 묻혀 비명을 지르는 영혼을 그녀는 평생 소중히 하고 있다. 밍크와 비명을 지르는 영혼은 소설을 쓴다는 행위를 통해 보기 좋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좋아좋아, 그렇게만 그렇게만."
산속의 외딴집에서 나는 몸뻬를 입고 그녀에게 성원을 보낸다.

- 좋아좋아, 그렇게만
모리 요코 《초대받지 못한 여자들》 해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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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른 길을 택한 배경에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라는 수련을 견디며 도달하려 했던 것을 버린 자신에 대한 냉철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우리가 빈약한 재능에 매달리는 사이, 그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가볍게 다른 길을 택했다.

- 좋아좋아, 그렇게만
모리 요코 《초대받지 못한 여자들》 해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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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한순간에 적막해진다. 하지만 이곳이 조용하다고 느끼는 건 인간 감각의 한계일 뿐, 실제로는 아닐 터였다. 인간의 청각기관이 감지할 수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쉬지 않고 불어닥치고 있으리라. 모래를 걷는 전갈의 걸음과 새의 날갯짓, 대기권에서 타들어가는 유성과 지금도 우리를 스치고 있을 우주의 전파까지. 사막은 시끄럽다. 소란스럽고 가득하지만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건 꼭 토라질 때마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하는 랑의 고집과 닮았다. 나에게 화가 났음을 몸으로 말하던 행위. 내가 알아차릴 때까지.
그렇다면 이 사막도, 사막인 적 없던 이 땅도 인간에게 화가 났음을 침묵으로써 표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비유를 해본다. - P59

"하지만 당신의 말은 여전히 이해가 어렵군. 나에게는 이미 손이 있는데 왜 손이 없다는 상황을 생각해야만 하지? 존재하는 걸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인간은 왜 현상을 부정하고 오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는지 모르겠군." - P63

그러다 어느 날은 울었고, 어느 날은 잃어버린 서로를 찾는 연습을 했으며 어느 날은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랑은 그 행위를 납득하지 못하는 나를 구태여 설득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랑은 나를 설득했어야했다. 자꾸 생각하면 강해진다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그 방법을 알려줬어야 했다. 그렇게 랑은, 자신이 죽은 후에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알려줬어야 했다.
"자네가 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은 줄아나?"
"우주에는 기본적인 법칙이 존재하는데 생명이많은 변수를 만들어 가능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지."
"인간도 아는 게 없어서야." - P64

사막은 원하는 것 모두를 주지는 않는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만 한다. - P65

질병이나 죽음을 유발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행위를 지속하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조도 그랬다. 자야 할 때, 쉬어야 할 때, 먹어야 할 때를 언제나 지키지 않았다. 그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자잘한 감기와 질병은 피해갈 수 있었음에도 어쩌다 우연히 아프지 않은 순간만을 기억해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조에게 랑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랑도 조와 다르지 않았다. 육체의 순환을 거부하고 비틀어 생을 단축하면서까지 변화를 주려는 인간의 모습은 완벽한 세상으로 가기 위해 죽어야만 한다는 그들의 종교 같다. - P67

"들어가서 쉬어야 한다."
"계속 쉬라고 하니까 어째 더 고집부리고 싶은걸."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나는 일부러 극단적인 상황을 예측해 말한다. 고집 부리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꺾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단단한 말을 꺼내거나 완전히 녹아내리도록 여리고 따뜻한 말을 꺼내거나, 여러모로 내게는 전자가 쉽다.
"바라는 일이야."
하지만 버진은 내가 이길 수 없는 절대적인 말을 꺼냄으로써 마지막 호소도 무력화시킨다. 그러길 바라고 하는 행위를, 나는 바꿀 수 없다. - P68

~ 내가 죽은 이들의영혼을 사후세계에 안전히 안내할 거라고 믿었지. 희망을 얻기 위해서. 나는 그 역할만 하면 됐어. 그래서 아무 말이나 자신 있게 던졌지. 힘이 된다면, 그래서 살아갈 수 있다면 진실 따위 다 무슨 소용이겠어? 배도 부르지 않고 목도 축일 수 없는 그까짓 거. 여러 의미로 대단하지 않나? 인간이 망친세상에서 살면서 인간을 믿는다는 게." - P70

덜컥 말문이 막힌다. 나는 ‘안다‘와 ‘모른다‘만 선택할 수 있다. 믿음은 두 가지를 동시에 품고 있기에 믿는다는 단어는 내게 맞지 않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믿음은 알고 있음의 방증이다. - P73

버진이 사막을 둘러본다.
"어디든 가지만 어디로 가고 있지는 않네."
그것은 모호하지만 분명한 말이었다. - P74

~ 랑은 나를 지나치지 못했다. 랑의 그 어떤 오지랖 내 앞에 멈추거나 지나치는그 한 걸음의 차이로 나는 다시 켜졌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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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또다시 모습을 바꾸어 혼란을 주지만 나는 내 발끝이 향한 곳으로 걷는다. 수렁을 피해 가기 위해 한 발자국씩 천천히, 진동에 따른 모래의 움직임을 살피며 걷는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걸음을 멈춘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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