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계절과 추억은 연결되어 있다. 제철음식을 먹을때, 사람은 추억을 더듬어 간다.
그게 달콤한지 괴로운지는 상관없이.
"당근잎…………. 옛날이랑 같은 맛이면 좋겠다…………."

- 추억에 붙인 딱지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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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막걸리도 한잔 곁들였다. 참 오랜만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면서, 밀려간 시간들을 회복시켜갔다.

- 나도 누군가에게 단단히 말할 수 있기를 - P89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대하는 그 사람만의 취향인지, 벌써 많은 발자국들을 내고도 자꾸 내고 있었다. 수백 개도 넘어 보이는 발자국은, 어지럽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언젠가 언제쯤…… 돌아보게 된다면 내 인생의 발자국은.……… 어디에 어느만큼 제일 많이 찍힐 것이고, 그러다 어느 누구 앞에서 우뚝 멈춰 설 것인가.

- 바깥을 보세요 첫눈이에요 - P95

첫눈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잠시 뭔가에 푹 빠져 지내고 싶은 무작정의 무엇, 우리가 우리의 원래 상태대로 돌려지고 싶은 어쩌면 회귀의 욕망.....… 당신도 눈을 맞으며 슬퍼야 한다. 당신은 눈 속에서만 인간적으로 슬퍼할 수 있다.
그런 첫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 빠지게 기다렸던.


우리는 왜 첫눈이 오면 꼭 만나자고 약속을 했을까.
그리고 왜 첫눈 오면 만나자고 한 그것이 다였을까.
첫눈이 오는 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이미 어떤 약속이 잡혔는지도 모를 일인데 우린 참 어리숙하게도, 미련하게도 몇몇의 약속들을 배치하는 일에 열을 냈다. 지켜지지 않아도 좋다는 맑고 착한 말이어서 그랬을까. 그 말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그 순간만으로도 행복해서였을까. 사람들은 눈을 기다리며 기뻐할 준비와 슬퍼할 채비를 동시에 하고 있다.
우리는, 또 약속을 하게 될까. 첫눈이 내리면 어디서 만나자고.
그래. 인생은 그런 것이겠다. 그 말이 다였으며, 그 말이 무의미한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인 것. 그러니 우리가 기약 없는 약속만으로 충분히 좋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거다.


첫눈이 온다는 건, ‘바깥을 내다보세요‘라는 당신에게 보내는 인사이니까. 그리고 첫눈이 온다는 건, 그 첫눈을 밟으며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가능성일 테니까.

- 바깥을 보세요 첫눈이에요 - P96

당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무시하고 가벼이 여긴 수많은 일들이 판결해줄 것이다.


당신이 애써서 가장 좋은 시간을 내어준 친구들이, 사랑하는 대신 욕을 남기며 떠난다 해도 당신은 그 친구들을 맨 나중까지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젊음이라는 피부가 아니라 세월의 분자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기를 바라며


설령 당신이 어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하나 남기는 것없다 하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떠올릴 때 슬픔 대신 어느 믿음직한 나무 한그루를 떠올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나는 바란다.


세상과의 이별을 앞둔 순간에 단어 하나가 맴돌더라도 그 단어를 마음속에서 꺼내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죽음 앞에서 확연히 떠오르는 뭔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다 풀고갈 상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살면서 미처 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리석게도 영원히 내성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 언젠가 그때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으로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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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이즈미」는 돗토리 현 야즈 군에 있는 스와 주조에서 만드는 일본주이다. 스와 주조는 1859년에 창업한 전통 있는 주조 회사로, ‘술 만들기에 하늘, 즉 완성이나 충분함은 없다‘는 의미를 가진 ‘하늘 없는 주조‘, 그리고 ‘매해가 첫해‘
라는 두 문장을 이념으로 삼아 언제나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 포렴 저편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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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강독을 그치지 않고 절차탁마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공자와 제자들은 꾸준히 이 나라 저 나라로 여행을 계속했다. "새는 나무를 골라 앉을 수 있지만 나무가 어찌 새를 고를 수 있으리." 이처럼 극히 기품은 높으나 결코 세상을 비꼬지 않고 끝내 등용될 것을 구했다. 그리고 우리가 중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라 천하를 위하고 도를 위한 것이라고 진심으로, 참으로 어이없게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빈곤해도 늘 밝은 얼굴을 하고 괴로워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실로 이상한 일행이었다.

- 중국의 고담 : 제자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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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무심히 자유로운 마음을 앞세울 수도 있는 사람. 그럴듯하거나 그럴 만한 별 기분도 아닌 상황에서 팝콘 터지듯이 웃어젖히는 사람.

- 내가 바라는 건 하나, 오래 보는 거 - P62

유행하는 것에 자주 지갑을 여는 사람보다 지난 유행이라도 과감히 그걸 자기 것으로 소화해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에게 오지 않아도 좋고, 나를 좋은 친구라 인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믿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 내가 바라는 건 하나, 오래 보는 거 - P63

누군가에게 산은 무의미일 수 있더라도 나에게는 명백한 의미다. 산을 넘을 때마다 생각한다. 힘겹게 산을 넘을 때마다 힘겹게 한 사람을 여행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산을 넘는 것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 그대로를 따라가보는 것이다. 한 사람을 아느라, 만나느라, 좋아하고 사랑하느라. 그리고 표정이 없어지다가, 멀어지다 놓느라....... 마치 산을 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가졌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을 등반하여 끝내 정상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전부를 머리에 가슴에 이고 지고 오른다.

- 나는 능선을 오르는 것이 한 사람을 넘는 것만 같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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