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에 계층이 만들어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 기원전 500년을 전후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오래된 지역인 그리스, 인도, 중국에서위대한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석가모니, 노자, 공자 등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사람들의 ‘생각의 특성‘이 지리와 기후에 의해서 결정됐다는 점이다. 강수량의 조건은 농업의 품종을 결정한다. 세계의 문화 권역은 크게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연강수량 1천 밀리미터‘다. 연강수량이 1천 밀리미터 이상이면 벼농사, 1천 밀리미터 이하면 밀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이 두 품종은 농사법이 다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하는 벼농사는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치수사업이 필요했다. 벼농사에는 저수지와 보를 만들거나 물길을 만드는 토목 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반면 밀 농사를 할 때에는 개인이 씨를 뿌리며 다니면 되고 치수를 위한 대형 토목 공사도 필요 없다. 노동방식 면에서 벼농사는 여러 명이 힘을 합쳐서 하는 방식이고, 밀 농사는 개인적으로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벼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 - P9
화적 특징의 차이는 알파벳과 한자 같은 문자나, 체스와 바둑 같은 게임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강수량이라는 기후적 차이는 건축 디자인의 차이도 만들었다.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
- 여는 글: 기후, 문화, 변종 - P10
위대한 이론은 다양한 현상들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한 이유는 야구공의 움직임부터 복잡한 행성 간의 움직임까지 한 가지 공식으로 다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에서 새로운 생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는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생명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구공 같은 무생물은 뉴턴의 공식과 마찰력을 계산할 수만 있으 - P13
면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당구공 자체는 에너지의 흐름이 없는 달힌 시스템이기 때문에 계산이 비교적 쉽다. 당구공의 움직임은 당구공과 당구대 사이의 에너지만 계산하면 된다. 하지만 생명은 외부로부터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열린 시스템이다. 그만큼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인 변수 요인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은 예측하거나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혜성의 궤도를 예측하는 것보다 사람이 다음 순간에어떤 생각을 할지 예측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생물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듯이 생물이 만드는 문화나 창조도 그러하다. 우주의 ‘불변의 법칙‘ 중 하나는 만물의 무질서는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이다. 방을 따로 청소하지 않으면 쓰레기통이 된다. 오직 청소하고 정리 정돈에 힘과 에너지를 썼을 때에만 분위기 있는 방을 만들 수 있다. 문화도 그러하다. 문화는 방대한 에너지의 흐름 과정 중에 잠깐 동안만 만들어지는 질서라는 ‘저 엔트로피‘의 상태이다. 따라서 잠깐만 에너지의 흐름이 깨져도 문화는 서서히 소멸한다. 마야나 잉카 문명은 한때 거대한국가를 만들고 문명을 꽃피웠지만 식량이나 물 같은 에너지의 흐름이 사라지자 사라져 버렸다. 서울도 농촌에서 재배하는 농작물, 중동에서가져오는 석유, 팔당댐의 물, 발전소에서 만들어 송전해 주는 전기라는외부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일주일도 안 돼 폐허가 되기 시작할것이다. 건축물은 그만큼 만드는 데 힘들고 유지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요구된다. 인류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모아서 건축물과 도시를만든다. 건축물과 비교해서 공예품은 전파가 쉽고, 텍스트는 공예품보다 전달과 유지가 더 쉽다. 텍스트에 담긴 사상은 번역만 되면 여러 문화권으로 퍼져 나간다. 건축, 공예품, 텍스트는 문화의 유전자 코드다. 이 문화 전달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 발전시킨다.
여는 글: 기후, 문화, 변종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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