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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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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산다. 그것이 비록 작든 크든.

눈두덩이 안에 좁쌀만한 다래끼가 나기 시작했다. 하도 잦은 일이라 먹다 남은 항생제를 의사 처방없이 먹고, 쓰던 안약을 넣고 나니 붉게 달아오른 눈두덩이가 멀쩡했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나서 만져보니 눈두덩이 깊숙이 새끼 손톱 굵기의 멍울이 만져졌다. 얼른 안과에 가보니 다래끼가 덩어리가 져서 째야만 한다고 했다. 마취하고 째고 나니 눈두덩이가 두둘겨 맞고 난 것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일주일이 지나자 정상적인 눈으로 돌아왔다. 곪은 상처는 덮어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짜고 도려내야 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진리다. 그런데도 가끔 잊고 산다. 덮어두면 다 잊을 듯이.

<유진과 유진> 에서 작은 유진 가족은 유치원에서 당했던 '성폭력' 을 없었던 일처럼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덮어버렸다.  아는 사람이 없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반대로 큰 유진 가족은 그 충격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네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로 큰 유진을 다독였다. 또 인간 본성 그대로 울부짖고 가해자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 만난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열린 마음을 가진 아이와 꽁꽁 닫힌 마음을 가진 아이로 해후를 하게 된다. 이미 상처를 치유한 큰 유진은 작은 유진의 곁에서 '성폭력' 의 기억 속에서 방황하는 작은 유진의 방황과 좌절을 도와 서로 껴안는다. 

어른들은 간혹 아이들, 청소년들은 부모의 그늘이나 관심 속에서 아무런 고민도 고통도 상처도 없이 살거라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산다. 그 상처는 도려내고 짜내야만 다시 새 살이 돋아 오른다.

<유진과 유진> 은 '성폭력' 이라는 사건을 통해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감정과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아프게 보여준다.  <유진과 유진> 은 짧고 간결한 문체로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쫄깃쫄깃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유진과 유진', '소라' 가 어느 새 살아 숨쉬는 내 친구가 되어 옆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유진과 유진> 의 묘사는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 닿는다.

<유진과 유진> 책표지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아주 가까이 서로 닿을 듯 살짝 구부려져 있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유진과 유진' 일 것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유진과 유진' 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결국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사람만이 보듬어 줄 수 있다. 이제 꽃이 진 자리에 파란 새 잎이 솟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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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7
한스 페터 리히터 지음,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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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히틀러의 광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어나가고 있었고 유대인들만 가둬놓은 게토에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굶주림에 지쳐 게토에서 탈출하다 죽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그 역사의 현장한 도시에, 고아가 되어 힘겹게 살다 지쳐 스러져간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게쉬타포의 만행은 여러 영화나 책을 통해 많이 보아오고 들어왔다. 영화에서는 주로 게토에서의 생활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보내지거나 죽음을 일방적으로 강요 당하는 유대인의 삶과 처절한 죽음이었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에서는 우체국 공무원 신분으로 다른 독일인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프리드리히 가족이 당하는 급격한 추락을 보여준다. 그 추락은 개인의 선택이나 잘못이 아닌 단지 유대인이라는 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보여지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과 구별은 오히려 깡패적 차별보다 더 두렵고 섬찟하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가족이 겪는 고통이 더 가슴을 울린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그 진실은 오랫동안 프리드리히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독일인 친구 '나' 의 가족이다. 그들은 프리드리히 가족을 끝까지 보호하지는 못했지만 히틀러 광기 한 켠에 비켜서있던 또 다른 독일인들의 양심일 것이다. 진실의 힘은 역사가 말해준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전율을 느낀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어.' 혼자 읊조리다 얼른 다음 페이지를 넘겨본다. 끝이다. 그러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에 지역에 들어와 살면서 유대인 전용지역을 만들어 높고 커다란 장벽을 둘러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폭력적인 대립과 차별을 하면서 살고 있는 현재의 유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어른들이나 학생들이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를 읽고 나서 유대인들이 겪어냈던 참상과 현재 필레스타인인들과 충돌하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를 프리드리히가 겪었던 과거의 역사와 비교하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면 지금은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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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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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미하엘 엔데/보물창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정관념에 집착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고 무언가 꿈꾼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또한 제도나 권위, 돈이라는 거대한 틀에 사로잡혀 위선과 허위 속에 자신을 꽁꽁 가둬버리고 만다. 아니 갇힌지도 모른채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간다.
일정한 길을 일정한 속도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에게 미하엘 엔데는 잠시 멈추어 서서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라고 기막힌 상상력을 통해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미하엘 엔데의 묘사는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함께 발휘되지 않으면 감을 잡을 수 없는 '기호' 와도 같다고 옮긴 이가 말하고 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자유의 감옥' 을 나름대로 상상해서 읽은 감흥과 옮긴 이가 작품의 이해를 위해 해설을 해 놓은 부분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했으니까.
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자유의 감옥' 중 '긴 여행의 목표' 와 '길잡이의 전설' 표제작인 '자유의 감옥' 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결국 그 세 편의 주인공들은 고행의 길을 통해 기적의 문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 섰다. 세상 사람들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상식과 인습이라는 감옥, 그 모든 허울을 훌훌 벗어 던진 채.
판타지 문학은 탄탄한 현실을 밟고 서지 않으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만다. 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하나의 완벽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자유의 감옥' 을 읽으면 어느새 연필을 가지고 와서 어떤 문장에 줄을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책을 읽다가 '자유의 감옥' 을 가슴에 얹은 채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적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감옥의 창틀을 휘어버리는 강한 마음의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깊이 가라앉아 있던 내면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훌훌 벗어 던져라! 그리고 진짜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게 뭔지 그 목표를 향해 긴 여행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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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일기 책읽는 가족 48
오미경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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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일기' 제목에서부터 그 안에는 어떤 은밀한 얘기가 숨어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열세 살 여자 아이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서로 같은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아이들은 따뜻하고 좋은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마냥 어려움 모르고 살아 가기도 한다.
'교환 일기' 에는 소녀 가장 민주와 사업 실패로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 아닌 고아로 작은 아버지에게 얹혀사는 강희, 그리고 아무런 문제 없이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며 사는 유나가 나온다. 그 세 아이들이 교환 일기를 통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간다. 물론 그 일기에 자기 진짜 모습이 아닌 거짓 모습만 적어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누구에겐가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다잡아가게 된다.
사실 소녀 가장 민주나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된 강희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엄마에게 모든 걸 의존하는 유나가 훨씬 더 생생한 캐릭터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나가 담당하는 부분이 적어서 내심 섭섭했다.
'교환 일기'는 흔히 어른들만 슬픔과 고민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의 틀을 깬다. 열세 살 아이들도 슬픔도 고민도 삶의 고단함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대견하게도 스스로 알을 깨고, 누에가 허물을 벗 듯 한 단계 성장을 한다.
'교환 일기' 는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이 슬픔을 거쳐 멋지게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슬픔도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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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엔 공룡 똥구멍이 있다 작은도서관 5
손호경 글 그림 / 푸른책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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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 가고 싶다.

우포늪 가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푸름아, 마루야 안녕? 난 유치원 다니는 딸을 둔 아줌마야. 난 너희들이 참 부럽다. 왜냐구? 우리 청주시에도 많은 생물들이 보듬고 살던 '원흥이 방죽' 이 있었단다. '방죽' 은 저수지를 말해. 그런데 원흥이 주변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도 밀어버리고 아름드리 소나무도 다 베어 버렸단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 '원흥이 방죽' 주변을 남겨 달라고 애원을 했지. 그 덕에 '원흥이 방죽' 만 덩그랗게 남게 되었어. 얼마 전 다시 찾아갔더니 누런 황토흙만 남아 있더라. 바로 옆에는 아파트를 짓고 있고. '원흥이 방죽' 주변에 살고 있던 그 많던 생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참 슬픈 일이야. 우리 가족도 '원흥이 방죽' 을 살려달라고 촛불 시위에도 참석했었어.

너희들이 살고 있는 우포늪에는 자라풀,창포, 생이가래,가물치, 마름, 소금쟁이, 물방개, 물옥잠, 구절초, 방가지똥, 청설모, 물총새 등 정말 다양한 생물들이 더불어 살고 있더구나. 부러워. '원흥이 방죽' 에도 그랬단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게. '원흥이 방죽'에 여러 번 다녀온 우리 딸이 아파트를 짓고 있는 아저씨들을 쫓아낼 방법이 있다는 거야. 뭐냐고 했더니 글쎄, "엄마, 황소개구리를 잡아다 방죽에 풀어놓는 거야. 그래서 황소개구리가 큰 소리로 '개굴개굴' 소리 지르면 아저씨들이 감짝 놀라서 도망 갈 거야." 그 말을 듣고 난 배꼽 빠지게 웃었어. 그래서 서울에서 온 너네 친구 선호 말을 들려 주었지. "원래 식용으로 황소개구리를 수입한 거래. 그런데 너무 많이 퍼져 버린 거야. 황소개구리가 수생생물을 마구 잡아 먹어서 먹이사슬이 파괴될지도 모른대. 생태계 보조 차원에서 황소개구리는 아주 나쁜 녀석들이라고 했어." 물론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었지.

올여름엔 휴가를 어디로 갈까 생각했는데 지금 결정했어. 바로 너희들이 살고 있는 경남 창녕 우포늪이야. <우포늪엔 공룡 똥구멍이 있다> 책을 들고 우포늪 찾아 갈래. 그래서 책에 그려져 있는 생물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올래. 우리 딸이 좋아할 것 같아. 그리고 딸에게도 우포늪 공룡 똥구멍을 보여 주고 싶고 공룡 방귀소리도 들려주고 싶어. 정말 기대 되고 설렌다. 우리가 갈 때까지 너희들이 계속 우포늪을 아끼고 사랑해 줄래? 그럴 거라고 믿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통하잖아. 지금 금방이라도 우포늪에 가고 싶다.

여기는 지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우포늪에도 비가 오고 있을까? 커다란 연잎을 우산 삼아 뛰고 있는 너희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만날 그 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 안녕.

2005.6.10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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