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경청
김주현 지음, 오승민 그림 / 만만한책방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만한책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냥 걷기 시작한 돌멩이와 엉뚱한 단어 수집가인 코끼리, 두 친구는 오늘도 어디로 걷는지도 모른 채 길을 함께 걸어가지요. 그러다 사막에서는 혼자 지내는 사막여우를 만나지요. 코끼리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지만, 사막여우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멀찍이 떨어져 서 있어요. 처음엔 그저 까칠하다고 생각했지만, 돌멩이와 코끼리는 곧 알게 되지요. 사막여우에게는 그렇게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걸요.


코끼리와 돌멩이는 계속해서 걸으며, 말보다 꼬리로 마음을 전하는 고양이들을 만나고 대화 방식이 달라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닫지요. 또, 다리가 많다는 이유로 “징그러워!”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은 송충이와는 서로 다른 겉모습 속에 깃든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련곰탱이’라 불리며 속상했던 곰에게는 위로와 응원을 건네며 마음을 다독여주었지요.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귀 기울이면 진짜 마음이 들린다는 걸 배워가지요.


저는 사막여우와 코끼리의 첫 만남이 특히 마음에 남아요. “친구 따위 필요 없어!”라며 외치는 사막여우와, “너무 귀엽다!"라며 한걸음에 다가가는 코끼리. 두 친구의 온도 차는 마치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의 마음을 닮았지요. 사막여우에게는 ‘두려움’이, 코끼리에게는 ‘호기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마음들은 모두 진심이었지요. 그 진심이 부딪히고, 멀어지고, 다시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적당한 거리’가 결국 ‘관심과 존중의 거리’임을 알려주었지요. 커다란 말보다 커다란 귀로 들어주는 일, 적당한 거리보다 ‘부드러운 거리’로 다가가는 용기가 중요하다는걸요. 사막여우와 코끼리의 관계는 듣는다는 것이 단순히 ‘귀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두려움과 다름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라는 걸 보여주었지요.


코끼리와 돌멩이의 여정은 친구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와 다름,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경청’의 힘을 따뜻하게 들려주지요. 돌멩이는 손도, 귀도 없지만 누구보다 코끼리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지요. 그 마음 덕분에 코끼리는 ‘까칠한 경계’, ‘오톨도톨한 사랑’ 같은 단어들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 가고 있어요.


다른 모습, 다른 언어, 다른 거리감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귀를 기울이는 두 친구의 여정은 저에게 묻고 있어요.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일까?”

결국, 말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시작임을 전해 주고 있지요.


‘외로운 경계 / 오톨도톨한 사랑 / 납작한 무례 / 뱅글뱅글 복수 / 가지가지 아름다움 / 포슬포슬한 죽음 / 커다란 경청’ 이렇게 사랑스러운 챕터 제목들만 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아이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단어들이 가득해요. 사과, 친절, 죽음처럼 명사로만 표현하지 않고, 그 앞에 형용사를 붙여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담아냈지요. 아름다운 사과, 새침한 친절, 까칠한 다정함, 떠들썩한 냄새… 익숙한 단어들이 새롭게 느껴지지요. 단어 하나 덧붙였을 뿐인데 말의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요. 하지만 그걸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단어 하나, 마음 하나를 더 소중히 다루고 싶어지네요.


행복한 그림책 읽기! 투명 한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