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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ㅣ 올리 그림책 57
현단 지음 / 올리 / 2025년 7월
평점 :
올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디 가?”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여기”, “저기”라며 정확한 대답을 주지 않지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어 심통이 난 아이는 곧 분수대에서 엄마와 함께 물을 맞고, 젖은 옷을 말리다 과일 가게에 들르고, 수박을 먹으며 숲으로 가고, 입가에 묻은 수박씨는 놀이공원의 바이킹을 타며 날아가 버리지요.
그 여름은 더 이상 아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하는 여름이 되었어요.
와~ 첫 장부터 이 강렬함은 무엇일까요?
숨 막힐 듯 뜨거운 공기, 그림 속에 가득한 열기와 따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무채색으로 시작된 하루는, 분수대에서 ‘톡’ 하고 비눗방울이 터지는 순간부터 찬란하게 물들지요.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가르는 장면에서는 뺨을 스치는 시원함까지 전해지고요.
파란 하늘은 어느새 노을빛으로 타오르고, 그 순간, 저도 그 하루를 함께 달려온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시간, 그 감각, 그 빛.
한 번쯤 그런 여름을 지나온 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 앞에서
그때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예요.
장소를 정해두지 않은 엄마의 시작이 조금은 무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이를 향한 깊은 배려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어디에서 멈추든,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엄마는 조용히 곁을 지켜주었지요.
저 역시 예전엔 시간표를 촘촘히 짜며 여행하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날씨나 음식, 우연한 인연에 따라 발길이 바뀌는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요.
핫플을 찾아갔다가 실망하기보다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서 더 신선한 즐거움을 만나게 되거든요.
아이가 보낸 하루는 마치 스케치북 위에 겹겹이 그려지는 그림 같아요.
무채색 바탕 위에 분수의 파랑, 과일 가게의 선명한 색, 숲의 초록, 그리고 마지막 노을의 붉은빛까지
그 층층이 쌓인 하루는 ‘추억’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네요.
여름의 색채들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런 그림 말이에요.
그렇게 하루는 흘러가고, 아이의 표정도 조금씩 물들어가요.
그리고 그 모든 흐름 속에서 아이는 조용히 자라나요.
처음엔 ‘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이었지만,
결국 아이는 ‘어디’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요.
<여기저기>는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보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보여주었어요.
정해진 계획이 없어도, 삶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반복되는 일상에도 찬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고 살지요.
조금은 벗어나도 괜찮다고,
멈춰 있어도, 돌아가도, 그저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다고.
우리가 애써 찾지 않아도,
지금 눈앞에 있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요.
지금의 나를 살피고,
지금의 공기를 느끼고,
지금 이 말을 천천히 곱씹는 것.
그게, ‘현재에 집중하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요?
행복한 그림책 읽기! 투명 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