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섬으로 가다 -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김선미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봄-여름-가을-겨울, 눈으로 가장 먼저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은 바로 표지에 보이는 나뭇잎의 색상일 것이다.
강원도 춘천 북한강 가운데 자리한 남이섬, 서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 일상에 지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 나무가 숲을 이루는 그곳은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피톤치드가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숲속에서 삼림욕을 하고 남이섬을 떠나 집으로 갈 때면 못내 아쉬워 배 안에서 멀어져 가는 나무 한 그루도 놓치려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람보다 먼저 나무들 스스로 섬으로 갔다는 걸 알게 되어 '나무, 섬으로 가다'로 책 제목을 지었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사나흘을 남이섬에 머물며 자연 그대로의 남이섬을 고스란히 책에 담아냈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열정적으로 매진했던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던가.. 남이섬의 시간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관찰하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찾는 저자의 모습이 대단하고 부럽기도 했다.

 눈을 사로잡는 위의 사진은 책에 실린 자귀나무 꽃인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자귀나무의 잔잎의 개수는 짝수로 마주 보고 난 잔잎끼리 포개면 짝이 딱 맞아 밤이 되면 잎이 반으로 접혔다가 해가 뜨면 다시 벌어진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수면운동을 옛사람들은 부부금슬이 좋아지는 나무라며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처럼 각각의 나무에겐 오랜 세월 내려오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은밀한 사생활(?)이 있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 후끈 달아오른 나무는 이제 계속 살기 위해 잎을 내민다. 잎으로 차분하게 몸을 식힐 줄 알아야 한다. 뜨겁기만 한 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잎이 난 다음 천천히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한결 여유 있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 잊지 않아야 봄이다 중에서

보도블록 틈새로 자라난 민들레를 보고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곤 했는데 나무 역시 그냥 서 있는 게 아님을.. 새, 곤충, 균류, 미생물 등을 통해 환경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가지와 줄기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말처럼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슷한 나무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사귀와 열매가 다르고 그곳에서 피우는 꽃과 함께 저마다의 방식으로 4계절을 보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나에겐 언제까지고 이름 모를, 정체 모를 나무가 많은 남이섬이었을 것이다.

나무수국의 꽃을 보며 옛 기억이 떠오르는 저자처럼 나 또한 도토리를 보니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13세 때 가족과 함께 등산을 갔다가 손가락 살점을 베인 적이 있다. 땅에 떨어진 귀여운 모양의 도토리 안이 궁금해 스위스 군용 칼로 도토리를 가르다 베였는데 그 귀여운 도토리가 아래 사진상에 보이는 갈참나무에 있던 도토리였다니... 책을 통해 이름의 유래와 특징을 알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책에는 남이섬에서 만난 나무들과 자연 풍경들이 270여 장의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고, 뒷부분에는 '나무 찾아보기' 챕터를 통해 확대된 나무들의 모습과 설명이 나와있기에 책장을 덮기 전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막연하게 '나무와 꽃이 좋다.'에서 머물던 내게, 나무에 대해 알아가고 나무를 통해 배워가며 나무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진과 함께 그 안에는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들이 펼쳐지므로 벌써부터 남이섬에 도착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작가의 시선을 따라 남이섬을 느끼며 나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것 또한 좋았다.

4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 신록의 계절인 5월이 기다려진다. 책에 나오는 나무들과 풍경 그 안에 세밀한 것까지 전부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다.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가가 그린 <나무, 섬으로 가다>는 지친 일상 속 어지러운 마음을 힐링하며 모든 것을 내주는 자연, 나무를 닮아 마음이 넉넉해지는 책이기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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