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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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커피가 조금 남은 잔에 담배꽁초를 꽂아 두지만 않았어도, 오후 네 시 반까지 방치된 담배꽁초 냄새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남아 있지만 않았어도 순순히 회의실을 치울 생각이었다.

p.10

34살의 미혼 직장인 시바타는 본연의 업무 외에 차 대접, 회의실 치우기, 냉장고 청소 등 잡무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일은 직급과 상관없이 여직원의 몫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바타는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녀는 대체 어쩔 셈인 걸까... 대담한 거짓말은 하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부터 보는 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처음엔 그저 시바타의 거짓말이 언제 들통날지... 조마조마했다. 근데 읽어갈수록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그녀는 거짓말 한 것에 대한 거리낌이 전혀 없는 데다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 임신에 관심을 갖고 챙겨주는 남직원이 귀찮고 성가실 뿐이다.

임신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녀의 생활은 윤택해져갔다. 퇴근시간이 빨라져서 욕조에 느긋하게 몸을 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임산부 에어로빅도 즐기며 저녁 있는 삶을 누린다. 임신부 배지를 받아 전철에서 자리 양보도 받는다. 그리고 직장 내 잡무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배가 점점 불러오는 시기에 맞춰 배 안에 무언가를 넣으며 신경을 썼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한다. 산부인과에 방문해 태아 초음파를 보기도 하고 당당하게 남직원에게 배를 만져보라고까지 한다. 상대방의 반응도 그렇고 뒤로 갈수록 그녀가 진짜 임신한 건 아닌지 헷갈린다.

그녀의 거짓말이 들통날 것인지 말 것인지, 들통나면 그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가 임신을 함으로써 달라지는 주변 환경, 임산부 에어로빅에서 만난 임산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임신, 출산, 육아에 처한 여성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위장 임신한 시바타가 진짜 임산부들 사이에 섞여 동화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소재는 분명 참신했지만 디테일한 부분과 방법에 있어서 다소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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