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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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편이 실린 호러 단편소설집이다. 그것도 생애 처음으로 접한 라틴아메리카, 아르헨티나 호러 소설이다.

여름이면 호러쥐~! 하고 야심차게 펼친 이 책은 기존에 접했던 일본, 대만, 유럽, 미국 호러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동성애 코드, 마약에 취한 불안하고 무절제한 청소년들, 해골을 사랑하게 된 거식증에 걸린 여자 이야기, 남미 대륙의 미신과 흑마술의 등장, 여성에게 고의로 화상을 입히는 남자들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여성성 탄생 등 소설 전체가 주는 느낌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또 익숙하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단순하게 내용 자체로만 본다면 으응? 이게 뭐야..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지?! 하고 찝찝함이 남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공포를 자극하는 호러소설로만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편하고 뻔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시대에 걸맞은 결말로 마무리된다. (중략) 삶은 불가사의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미스터리가 우리의 일상에 존재 하는 것 같다.

p. 353 한국어판 저자 후기 중



실질적 공포는 책 속에 등장하는 기분 나쁜 강이나 흉가/폐가, 유령, 기괴한 모습의 존재 혹은 괴물들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를 비롯해 가정 폭력, 여성혐오, 성차별,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과 극빈층 등 부조리한 사회 현실임을 알 수 있다. 흉가에서 사라진 아이를 그린 [아델라의 집]은 도시괴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빈번히 발생했던 실종 사건에서 따왔다고 한다. 스티븐 킹이 일상생활의 공포를 활용한 것처럼 작가 자신 또한 공포의 모든 도상(圖像)을 이용했다고 하니,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사라진 열린결말의 그녀만의 호러세계를 체험하고 싶으시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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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에겐 본문의 각주가 없었다면, 옮긴이의 작품해석이 없었다면 아마도 상당부분 영원히 미지의 공포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의 진정한 공포를 맛보기 위해서는 남미 대륙의 정신을 지배하는 미신과 흑마술에 대한 이해와 아르헨티나의 역사나 라틴아메리카의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읽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트래블러-아르헨티나] 여행 에세이를 보고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전경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이 호러소설을 통해 몰랐던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사실과 환경문제를 비롯해 불평등한 라틴아메리카의 모습을 알게 되니 아이러니하면서 느낌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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