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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밤 되세요 ㅣ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평점 :

핑크빛 책표지, 꽃들 위로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남녀와 함께 [달콤한 밤 되세요] 제목의 소설은 얼핏 달콤한 연애소설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ㅎㅎ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일하다 어떤 계기로 인해 정신병원에 제 발로 입원하게 된 나명은 그곳에서 본인처럼 제 정상으로 보이는 도박중독자 박사장을 만나게 된다. 박사장은 알고 보니 다 쓰러져 가는 드림초콜릿호텔의 바지사장이었는데 나명을 불쌍히 여겨(?) 나명에게 호텔 캐셔 일을 제안한다.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근무 외 시간에 외국인 상대 통역 일도 하게 되는 나명, 아니 나주임은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이 개같은 새끼야!'라고 속으로 욕은 할 지언정, 어쨌든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해내려는 인물이다.
너무도 멀쩡해 보이는 그녀가,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그녀가, 어쩌다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어...?생각해보니 그러네. 정신병원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나주 임의 과거사와 함께 호텔에서 일하며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들과 사회 문제들은 씁쓸히 미소 짓게 만든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툭툭 던지는 나명의 위트 넘치는 고백이, 나명 자신의 문제만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가슴 아파했던 사건들, 지금도 자행되는 일들을 보면서 진정 책 이름처럼 달콤한 밤을 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리재 엄마인 최영옥의 독백에 가슴이 욱신거렸고, 선배가 나명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도 뭉클했다.
소설의 수정 작업에만 일 년여의 시간이 걸렸고 그림 작업에 석 달이 걸렸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자칫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가 될 수 있었는데 나명의 입을 빌린 노정 작가의 사이다스러운 멋진 어록들과 함께 드로잉메리의 일러스트가 한데 어우러져 달콤 쌉싸름한 분위기가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여러모로 참신했던 [달콤한 밤 되세요]처럼 소설과 일러스트의 컬래버레이션한 한국소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오발탄 아줌마도 다른 폐쇄병동 환자들도, 다만 자기 안의 심연에 갇혔을 뿐 적어도 남한테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 욕망도 과하면 병이다. 거기에다 공감능력마저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글자 한 줄, 말 한마디로도 듣는 이의 가슴을 찢을 수 있는 '진상'이 된다. 정신병원 바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저 수많은 진상들의 정상성은 무엇으로 증명 가능할 것인가.
사민아,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어. 네 무덤 위에 꽃을 뿌리며 네 몫의 삶을 대신 살아주겠다는 건 남아 있는 자들의 자기위안일 뿐이야. 네가 살지 않는 삶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명이 씨는 명이 씨 몫의 삶을 살아요. 리재의 몫 따윈 신경 쓰지 말아요.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다하다 저엉 안 되면, 그냥 대충 살아요. 그러면 또 어떤가요.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