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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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그 승리의 순간이 언제 어떻게 올지 알지 못하더라도. 미래의 기억이 없는 한 희망은 우리의 것이므로.

내게 희망의 근거는 단순하다. 우리는 다음에 벌어질 일을 모른다는 것, 세상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꽤 자주 벌어진다는 것. 비공식적 사계사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헌신하는 개인들과 대중운들이 역사를 만들 수 있으며 만들고 있다는 것.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이길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절망은 확실성의 한 형태다. 미래가 현재와 거의 같거나 현재보다 쇠락하리라고 믿는 확실성이다. 곤잘러스의 공감되는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절망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다. 마찬가지로 낙관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확신한다. 절망과 낙관은 둘 다 행동하지 않을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현실이 반드시 우리 계획과 일치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희망일 수 있다. 창조력과 마찬가지로, 희망은 낭만파 시인 존 키츠가 말했던 이른바 소극적 능력에서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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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 잠들기 전 내 모습이다ㅠㅠ
파김치가 되어 잠들지만 한 건 없는 거 같고. 그렇다고 뭔갈 하기엔 넘 힘들고. 고민만 하다 잠들기…

하루 종일 해놓은 게 없어.
자면 안 돼.
자기 전에 뭔갈 해야 해.
시낙하기 힘들어.
어쩌지…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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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해자는 잊으라 한다. 난 아직 아픈데…

예전 일 좀 꺼내지마! 그때 일은 그때로 끝내!

끝내길 원하는 사람이 누군데?
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쌓여서 만들어졌어요.
그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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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유효성을 증명해버린 듯.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건물 안에 있어라.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를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더러운 전쟁’의 실종들을 범죄로 명명하기는 쉽다. 하지만 지난 수천년 동안 여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계보도에서, 법적 신분에서, 목소리에서, 삶에서 사라진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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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다를 바 없는...

나는 그 말소에 관해서 많이 생각한다. 아니, 그 말소가 자꾸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내 친구의 집안에는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가 있는데, 거기에 여자는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 친구는 자신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반면에 친구의 남자형제들은 나온다. 친구의 외할아버지도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없다. 아버지들이 아들들을 낳고 손자들을 낳는 식으로 가계가 이어지면서 성(姓)이 전수된다. 가계도는 계속 가지를 치고, 가지가 더 길게 뻗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다. 자매들, 고모들, 어머니들, 할머니들, 증조할머니들. 방대한 인구가 종이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진다. 친구네 집안은 인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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