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마흔, 새로운 나이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종이봉투에 외눈처럼 박힌 쇠단추의 실끈을 천천히 푼다. 늙은 자들도 역시 미숙하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무도 세월보다 미리 손쓸 수 없다는 걸 안다. - P99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마음이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게 만들고, 하면 좋을 일을 안 하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결국은 남의 마음 말고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 P95
문구인(文具人).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암실에 빛한 줄기가 쨍 하고 들어와 온 방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평생을 찾아 헤맨 단 하나의 단어를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조우한 느낌! 아아, 정말이지 나는이 단어와 단숨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 P7
마침내 부드럽고 거칠한, 그러면서 폐부를 뚫을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흉악한 눈초리는 그녀가 아니라 묘하게도그녀의 어깨 너머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익숙한 영혼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 P101
비가 퍼붓는 것이나 쨍한 해의 날이나 모두 실제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후각이나 미각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 있었고 비의 냄새와 비의 맛 햇볕의 냄새와 햇볕의 맛 모든 것은 어느 순간 선명하게 되살아나 나를 찾아 올 것이다.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