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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 시장을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다
조지 쿠퍼 지음, 김영배 옮김 / 리더스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금융위기는 이제 지나간 과거에 불과한 걸까요? 주가는 연중 최고치를 넘나들고 있고 부동산 시장도 꿈틀 거리면서 대출 규제등의 정책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지나간 1년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고 새로운 투자 기회가 유혹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서점에 가도 파리만 날리던 투자 관련 책들에 사람이 모여들고 금융위기와 경제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담은 책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낙관적인 투자자들은 벌써 투자게임에 다시 뛰어들었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식투자를 조금 하고 있어서 경제나 투자 관련 책들도 가끔 읽게 됩니다만 이 책은 비교적 쉬우면서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주장을 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마 올해 읽은 경제 관련 책들 중에선 최고일 것 같습니다. - 물론 최근 피터 번스타인의 책이 나온 걸 확인했기에 연말쯤엔 순위가 달라질 순 있겠습니다만.
사실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민스키의 눈으로 본'이란 제목의 앞부분은 번역자가 붙인 것으로 원작엔 없는 것인데요. 다소 오버한 느낌은 있지만 흥행을 위해선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저처럼 하이먼 민스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미 '민스키 모멘트'나 '금융 불안정성 이론'을 접한 적이 있는 사람 모두에게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저자는 20세기 경제학을 지배한 전통경제학 - 그러니까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한 '효율적 시장이론'에 대해 반기를 들고 케인즈, 민스키의 이론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비유와 간략한 화폐의 역사를 통해 상품시장과 금융시장을 비교하고 왜 금융시장이 자체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과 인플레이션, 신용창조와 성장, 신용위축과 금융위기의 복잡한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쉽도록 탁월하게 풀어낸 것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경제학이 엄밀한 수학적 모델을 구축해 과학으로 분류된다고 하는데 그만큼 이론적으로 흐르기 쉽고 또한 일반인들에겐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사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고 이해했다고 해도 경제학자들이 벌이는 논쟁에 끼어들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책은 최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효율적 시장 이론을 단순화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경제학 자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단순화해서 모델링하고 그를 통해 이론을 구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경제학 자체를 다시 간결하게 요약하는 건 그만큼 복잡한 현실이나 이론과는 더욱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이들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에게 달려 있으며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면 최소한의 경제학 지식은 필요한 듯합니다.
아마 금융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경제와 금융시장을 나름대로 평가해 볼 수 있는 통찰력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물리학을 전공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3M이라고 해서 경제학자인 민스키외에도 19세기 전자기학을 통합한 천재 과학자인 맥스웰의 '제어시스템 공학이론'과 프랙탈 구조를 연구한 수학자 만델브로트의 '시장기억이론'을 합쳐서 새로운 금융 개혁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발상이면서 또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이 대안이 최종적이고 유일한 것인지는 다른 경제학자들이 판단할 몫이겠지만요.
지난 세기의 전통 경제학은 최근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긴 하지만 경제 성장 모델로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 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장을 원하기에 쉽사리 폐기 되거나 대체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도 금융위기가 진정되자 성장에 대한 열망이 다시 퍼지고 있는 걸 감지할 수 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하지 않을 리 없고 저자의 주장대로 거품은 제대로 터지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더욱 커져서 더욱 암울하고 위험한 미래를 향해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됩니다.
여전히 경제 전망에 대해선 정부와 경제학자들, 그리고 중앙은행(한국은행과 미국의 FRB같은)에 의존하겠지만 경기 침체기에 가장 위험에 처하는 건 일반적인 노동자나 서민들일 것이기에 이런 거시적인 금융시장과 금융위기에 관해서 알아두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