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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인간 -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지음, 허경.양진성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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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신용사회에 살고 있다. 여전히 지갑에 약간의 현금을 갖고 다니긴 하지만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을 때 빼곤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카드로 결제하고 돈은 컴퓨터를 통해 이체된다. 실질적으로 화폐가 종이였을때조차 그것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게 통찰력있는 사람들의 조언이었는데 이제 대부분의 돈은 실물로 존재하지조차 않고 비트로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신용사회가 우리를 더욱 편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빚을 지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불황으로 나타났지만 오늘날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의 과도한 국가 부채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위협요소로 남아있고 세계 경제는 침체되었으며 국내도 부동산 대출로 인한 가계부채로 인해 잠재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나 해결책은 수많은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지만 저자는 독특한 관점에서 부채 경제를 분석하고 있다.
작은 사이즈에 두께도 얇아 언뜻 문고본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만만치 않다. 특히 명료하면서 고도로 압축된 그리고 예리한 문체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만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니체, 들뢰즈, 푸코 같은 이들의 통찰 위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서 이들에 대한 기본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욱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몰라도 큰 상관은 없어 보인다.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무너져가고 있다고 보는 편에선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다시 꺼내 들고 있는 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르크스의 자본론만큼 자본주의를 잘 분석한 책은 없다고 한다. 거기에 철학자 답게 니체와 들뢰즈, 푸코라니, 분명 이해하기 쉬운 구성은 아니지만 이들 20세기의 예언자들은 오늘날 세계가 처하게 된 현실을 어느정도 통찰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의 부채, 사회의 부채, 그리고 국가 부채까지 현대 사회는 온통 빚으로 둘러쌓여 있다고 한다. 금융사회란 자본가들이 막대한 돈을 굴리면서 눈덩이처럼 부를 쌓아가는 동안 대부분의 나머지들은 금융경제 아래 채무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빚을 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국가 채무가 많아지면 그것 역시 개인의 삶을 위협하긴 마찬가지다. 아마도 경제학자들이 조명했어야 할 경제 이야기겠지만 철학자로서 우리의 삶과 실존을 위협하는 금융 경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