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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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33_[서초구립반포도서관]


오랜만에 시집을 손에 들었다.

느린 숨으로 천천히 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흠 마음이 시 속으로 걸어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난 그냥 종이 위에 시라고 쓰여진 활자만 눈으로 보고 있다.


내 마음이 시를 담아내지 못한다.


[도둑고양이를 위한 변명] 윤희상


주인도 없이, 집도 없이, 떠도는

맨 처음 해와 달을 보고, 아, 멀어지는 저 별들

고요한 골목과 지붕을 걷고, 어둠이 오는 숲길

그 많은 경계과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비 오는 밤에 담장 위를 홀로 걸었다.

안개는 죽은자들의 영혼이 다가오는 것

멀리서부터 안개가 스며든다.

배고플때는 먹고, 배고프지 않을 때는 먹지 않는다.

여러날을 굶더라도 사람들은 몰랐다.

그렇다고 먹을거리를 미리 숨기지 않았다.

조용한 밤이다 쓰레기 봉지를 헤집고 먹을거리를 찾을때,

바람이 불고, 수염이 흔들렸다.

척추가 잠깐 사이 용수철이 되는 것도 이럴 때다.

눈은 마음에 이르는 문이고, 길이다 문을 열고,

아직까지 걸어들어온 사람들은 없었다.

마주보고 있었지만, 끝내 마음과 마음은 닿지 않았다

눈이 사람의 눈과 이미 달랐다.

그러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람들이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다

두둑질 하는 모습을 보기라도 했을까 도둑고양이라니,

물증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혐의 있음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알고 싶다 먹이사슬을 흐트러뜨린 것은 누구인지

사람이 사람보다 나이가 많지 않은 신을 섬기다니

그런데 생각이 가 닿는 사이,

눈이 내리고,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거울을 보듯이, 발자국을 보면서 삶의 무거움,

또는 가벼움을 짐작해보았다 골목 어귀에서

사람들이 귓속말로 도둑고양이라고 말해도 무죄다

죄가 없다 계속 눈이 내리고,

조용히 혼자 말하고 싶었다 고양이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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