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방을 ‘비판하기 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그에 대한 나의 비판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그의 다른 글에 이미 존재할 때, 그것을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런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판당하는 적은 황당한 불쾌감을, 비판하는 나는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게 될 뿐 그 이후 둘은 ‘이전보다 더 자기 자신인‘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요컨대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이다. 그럴 때 나의 비판 또한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대로 적을 대하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적을 사랑하면서 고귀해질 것인가,
적을 조롱하면서 공허해질 것인가. 수많은 매체가 생겨나고, 수많은 비판들이 쏟아진다. 좋은 비판과 나쁜 비판이 있다. 전자는어려워서 드물고 후자는 쉬워서 흔하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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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언어는 문학의 매체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매체다. 언어가 눈에 띄게 거칠어지거나진부해지면 삶은 눈에 잘 안 띄게 그와 비슷해진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계속 시를 쓰고 읽는다. 시가 없으면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바로 그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 - P260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장렬히 실패하기 위해서다. 자기계발서가 ‘노하우‘를 알려줄때 인문학 서적은 ‘노와이‘를 알려주지 못한다. 인문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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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자체를 없애 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낱말로 표현될 것이고, 그 뜻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다른 보조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걸세.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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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꽤 많은 것들이 여러분 뜻대로안 될 겁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겠죠.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분명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될 거예요. 그 난관을, 여러분은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돌파할거예요. 인간이니까.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그리고 훗날 회한과 함께 돌아볼 때가 올 텐데, 바로 그때, 뭔가를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달라질 거예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 P176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를다섯 배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러므로 한 번 비난을 받으면 다섯 번 칭찬을 받아야 마음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일인 것이어서 그덕분에 우리 존재가 실제로 바뀔 수 있다는 것 등이 그의 체험적결론이다. - P175

인파커 J. 파머는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라는 헌사로 책을 시작한다. 정치가 영혼을 구제할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비통한 자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를아는 사람들의 일이어야 한다. - P190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과 그를 외면하지 못하는 결벽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타인에게 열려 있는 통각(痛覺)이 마비돼있거나 미발달된 이들이 하는 정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 P191

나는 그러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면서도 그 유혹에 저항하려 애쓰고 있다. 그 대상이 누구건 어떤 이들을 간편하게 ‘규정‘하고 ‘배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210

누구나 무엇을이용한다. 공허한 삶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는 이용할 무엇이 필요하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을 할 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살 가치가 있다는것… 그런 느낌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삶은 얼마나 충만해지는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태극기 집회는 정치적 저항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 축제일지도 모른다. - P211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 P217

흥미로운 것은 대다수의 당사자들에게 부끄러움이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선택받은 소수‘인 자신들에게 따르는 당연한 보상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타고난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혜택 앞에서서서히 자기 성찰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라면 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혐오‘에 대해서나 ‘농단‘에 대해서나 내가 이야기의 끝에 자꾸‘나‘를 주어로 삼은 문장을 써보고는 하는 것은 의례적인 반성적 제스처를 집어넣어서 스스로 면죄부를 발송 수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기 위해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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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의 글들을 읽어주었고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분들에게 대체로 내 삶을 이해하고 버텨내기 위해 쓰인 글들이어서 내 글의 시야는 넓지 않고, 살아낸 깊이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므로 나의 책이란 결국 나의 한계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 P9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 (사이먼 메이, 《사랑의 탄생》, 문학동네, 2016, 292쪽)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슬픔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한다. 이 경우 타인의 슬픔은 내가 어떤 도덕적 자기만족을 느끼며 공감을 시도할 만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추궁하고 심문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나를 불편하게 할것이다. - P25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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