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아 개미처럼 글을 쓰면서도 된장은 담글 줄 모른다. 복희는 글을 쓸 줄은 알지만 그걸 하느니 차라리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할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 담그기에 도가 텄지만을 읽고 쓸 줄 모른다.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 P98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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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야.
가녀장이 말했다. 이에 관해 웅이는 어떠한 불만도 없다.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희의 노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날마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장을 보고 냉장고를 경영하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시아버지랑 살 때도 그렇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않는다. 이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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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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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123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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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의 글소리
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 살아감"이다.
(Living is always "living together.")

연민은 "함께 살아감의 근원적 방식(Compassion a fundamental mode of "living together.")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I mourn, therefore I am.)3

살아남음-그것은 애도의 다른 이름이다.
(Surviving—that is the other name of a mourning.)4

매번 ... 죽음은 세계의 종국이다.
(each time..., death is nothing less than the end of the world.)5

무관심 또는 수동성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다.
(Indifference or passivity is the beginning of a crime against humanity. - P266

또한 이 ‘함께‘에는 살아있는 타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감,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감의 문제도 중요하다. 한인간이란 단순한 결을 지니지 않는다. 자신 속에 상충하는 다양한 모습의 ‘나‘가 있다. 데리다가 "나는 나와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한사람 속에 여러 ‘나‘가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 다양항 ‘나‘들과 ‘함께- 잘 - 살아감‘ 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쩌면 이 물음은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심오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 P280

구제 (charity)는 고통과 어려움의 정황이 ‘왜‘ 일어나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연민은 그 ‘왜‘를 묻는다는 점에서 정의(justice)에 관한 것이다. 구제와 정의의 결정적인 차이다.
셋째, 연민은 ‘함께 살아감‘의 과제와 책임의식으로 작동된다.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연민은 인간됨의 실천과 확인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라는 데리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다섯째, 데리다의 말처럼 연민이란 결국 ‘함께 살아감의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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