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글소리
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 살아감"이다.
(Living is always "living together.")

연민은 "함께 살아감의 근원적 방식(Compassion a fundamental mode of "living together.")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I mourn, therefore I am.)3

살아남음-그것은 애도의 다른 이름이다.
(Surviving—that is the other name of a mourning.)4

매번 ... 죽음은 세계의 종국이다.
(each time..., death is nothing less than the end of the world.)5

무관심 또는 수동성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다.
(Indifference or passivity is the beginning of a crime against humanity. - P266

또한 이 ‘함께‘에는 살아있는 타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감,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감의 문제도 중요하다. 한인간이란 단순한 결을 지니지 않는다. 자신 속에 상충하는 다양한 모습의 ‘나‘가 있다. 데리다가 "나는 나와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한사람 속에 여러 ‘나‘가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 다양항 ‘나‘들과 ‘함께- 잘 - 살아감‘ 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쩌면 이 물음은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심오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 P280

구제 (charity)는 고통과 어려움의 정황이 ‘왜‘ 일어나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연민은 그 ‘왜‘를 묻는다는 점에서 정의(justice)에 관한 것이다. 구제와 정의의 결정적인 차이다.
셋째, 연민은 ‘함께 살아감‘의 과제와 책임의식으로 작동된다.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연민은 인간됨의 실천과 확인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라는 데리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다섯째, 데리다의 말처럼 연민이란 결국 ‘함께 살아감의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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