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구할 수도 있잖아!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수는살아남은 단 한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들을 기억했다. 미수에게 목소리는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죽도록 내버려 두는 존재에 가까웠다. 그런 존재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환은 계속되었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생각하면서도 미수는 매번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었다.
미수는 점점 고요해졌다. 친구들과 멀어졌다. 쉽게 웃지 않았다. 말이 줄었다. 자기혐오가 짙어졌다. 더는 소설을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사춘기 운운할 때마다 미수의얼굴에 경멸이 스쳤다. 소환을 겪기 전 미수의 꿈은 과학자였다.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아직 밝혀지지않은 진실에 꾸준히 몰두하는 사람, 미수는 그런 꿈을 꾼자신을 비웃었다. - P72
죄책감 없이 여자를 폭행하고 납치하고 감시하고 죽이는 남자들, 목화는 봤다.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 없고, 자기 가슴을 내려쳐도 아픈 줄을 모르고. 많은 여자를 구하지못했다. 언제나 단 한 명이었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건들.
어둡고 위험하고 고립된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아는 남자가, 모르는 남자가,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아버지가, 연인이, 배우자가 오빠가, 남동생이, 아들이 여자를 때리고 죽였다. 그럴 때 목화는 냉혈인이 되고 싶었다. 영화에 나오는 스나이퍼나 킬러처럼, 죄책감 없이, 기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싶었으나 그것은 방금 목화가 지켜본 그 남자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목화는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 살리기위해서는 목격해야만 했다. 어느 날 목화는 중개 중에 커다란 액자를 봤다. 액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분께서는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비를 내려주신다.
<마태오복음> 5장 45절 - P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