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시각적이었다.
가난한 방일수록 인간을 우습게 아는 시커먼 균사체가점령했다.
가난은 후각적이었다.
가난한 시간일수록 텁텁하고, 답답하고, 막막한 냄새를쌓아올렸다.
가난은 촉각적이었다.
가난한 벽일수록 눅눅하고, 축축하고, 끈적했다.
가난은 청각적이었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다툼이 많고, 욕설이 잦고, 웃음도 크고, 시끄러웠다.
가난은 미각적이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사는 맛이 쓰고, 맵고, 짰다.
- P542

가시 스펙트럼 576 ~ 580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의 빛깔.
가장 눈에 잘 띄는 원색. 방문마다 붙어 강제퇴거를 통보한 날벼락. 잿빛 9-2×가 보수공사를 거친 뒤 껴입은 헌 옷같은 새 옷. 무채색으로 가득한 동네에서 홀로 도드라진건물 한 채. 리모델링을 멈추고 땜질로 전환한 부실의 결과물. 있음이 없음을, 많음이 적음을, 위가 아래를, 안이 밖을, 이 세계가 쫓겨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경로, 잘라내고 끊어내도 다시얽히고 묶이는 이야기의 혼돈, 환하게 칠한 건물 안엔 정작 없는 무엇. 덧칠만 하면 찬란한 세계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징그러운 환상. 머지않아 벗겨지고 말 껍데기. 비릿한 검정의 속임수, 노랑의 미로,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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