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오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의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넣다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그만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더 넣어야지 맛이 난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넘칩니다.
몇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 통을 닫았고요
금세 뚝배기를 비웁니다
저를 계속 보아오던 두 사람도
그제야 안심하는 눈빛입니다
휴지로 입을 닦다 말고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