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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19
바루 지음, 김여진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2년 9월
평점 :
평안이의 책이 택배로 도착했다.
아직 포장은 뜯지 않은 상태일 때, 평안이가 책 제목이 뭐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자유"라고 알려줬다.
책 제목을 들은 평안이의 표정에 실망한 기색이 살짝 비쳤다.
평안이는 집에 있는 책들의 제목을 하나 하나 읊어가며,
이런 책들은 재미있을 것 같은 제목인데 지금 도착한 책은 제목이 재미없을 것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제목이 달랑 '자유'라는, 어쩌면 철학적이기까지 한, 딱딱한 낱말 하나이니 말이다.
평안이에게 이야기는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 딱딱한 낱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이다.
내가 애타게 그리고 갈구하는 단어, 자유.
제목은 딱딱해 보이지만 그것 만으로 내용을 판단할 수는 없으니 함께 읽어봤다.
어느 서커스 단이 등장한다.
다른 나라 대통령의 초대로 이 서커스 단은 해외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국경선에서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서커스 단의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갈 수 있지만 서커스에 참여해야 하는 새들이 국경선을 넘으려면 너무나 다양한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문하는 사람이 이 서류, 저 서류, 수 십가지의 서류 종류를 읊어댄다.
관료주의의 문제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 서커스 단원 중 한 여자 아이가 좋은 생각을 낸다.
우리 문을 열어 새들을 전부 풀어 준 것이다.
즉, 새들은 자유를 얻었다.
서커스 단원들은 걸어서 국경을 넘어갔고, 새들은 날아서 국경을 넘어갔다.
땅에 비친 날아가는 새들의 그림자를 본 검문원은 절규했다.
국경을 넘은 새들은 다시 서커스 단의 우리로 돌아왔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에 보면 이 부분까지 소개되어 있다.
인터넷으로 책 소개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새들이 우리 밖으로 나갔다가 국경을 넘어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온 것, 다시 서커스를 해야 하는 새들, 그것이 자유일까? 새들이 스스로 서커스를 하기로 선택한 것(어쩌면 훈련이나 학습에 의해 다시 우리로 돌아온 것일 수도 있는 행동)을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택배로 책을 받아 보고 직접 읽고 나서야 이 의문이 풀렸다.
'그래, 진정한 자유란 이런 것이지!'
일곱 살 평안이에게는 결과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평안이는 마지막 부분에서 여자 아이(팔로마)가 한 행동(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 포스팅에는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쓰지 않음)을 보고서
팔로마가 왜 그렇게 했냐고 내게 물었다.
이 물음으로 인해 평안이와 '자유'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자유라는 것은 깊고 넓게 생각해야 하는 철학적인 주제라
아이뿐만 아니라 나 조차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자유에 대해 아이와 논하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한 방 먹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평안아, 오늘 머리 어떻게 묶어줄까? 양쪽으로 뿔머리 해줄까?"
라는 나의 제안에 평안이는 오케이를 했다.
머리카락을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을 뿔머리로 묶었다.
그리고 반대쪽을 뿔머리로 묶으려고 했는데
평안이가 이쪽 머리는 묶지 않고 푸르고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 쪽만 묶고 반대 쪽은 푸른다고?
너무 우스꽝스러운걸? 정신 나간 아이의 머리 같잖아!
남들이 보면 애 엄마가 머리를 왜 저렇게 했냐고 흉보겠어.'
이런 나의 생각으로 인해 평안이를 설득했다.
뒤 쪽 머리는 다 묶고, 앞 쪽의 옆 머리를 묶지 않고 남겨서 푸른 것처럼 해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머리를 다 묶었다.
그런데 평안이는 그 머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곧 평안이는 『여자아이를 위한 첫 성평등 그림책』이라는 책을 가져 와서 내게 펼쳐 보이면서
책 속의 이 여자아이처럼 머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책 속의 여자아이를 보니 단발인데, 머리카락의 반은 삭발을 했고 나머지 반만 푸르고 있었다.
그 파격적인 머리.
그 책속에는 아이들도 자기가 원하는 헤어 스타일로 머리를 꾸밀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오늘 오전에 나는 이 일로 화가 났다.
평안이가 내가 해 준 머리를 싫어해서 때문만은 아니다.
『여자아이를 위한 첫 성평등 그림책』은 내가 평안이에게 읽어 준 책이다.
당연히 평안이가 책 속의 여자아이들처럼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어 준 책인데
내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다르게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화가 났다.
그러던 중 지금 포스팅을 쓰고 있는 책인 『자유』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 평안이도 평안이가 원하는 헤어 스타일로 꾸밀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건데, 챙피함을 견뎌내야 하는 책임을 내가 지게 되는건 어쩌란 말이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잘못이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자유'라는 것에 대해 단 한번에 답을 찾을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2년 뒤면 불혹인데 요즘은 그것도 아니라니깐!
차곡차곡 경험과 생각을 쌓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는 생각이 정립되고 가치관과 행동이 일치하는 날이 오겠지!
오늘 하루는 자유에 한 발자국 다가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