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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한다는 착각 - 멸종에서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반격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정신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5월
평점 :
북극해와 바렌츠해, 사르가소해와 스발바르 제도, 르셀링섬과 플릴란트섬. 평생 가 볼 일 없을 것 같은 바다와 섬들이 책 속에 빼곡하게 등장한다.

프랑크 베스테르만의 <공존한다는 착각>은 일곱 동물을 따라가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살핀다. 저자는 발칸반도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의 생태를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의 이야기 속에 풀어놓는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해 왔고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 왔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노르웨이레밍 이야기였다. 나는 오랫동안 레밍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집단자살을 하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동 과정에서 생긴 사고와 인간이 덧씌운 이미지가 만나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자연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만든 이야기를 믿고 있었던 셈이다.

유럽뱀장어 장에서는 책에 실린 지도를 여러 번 펼쳐 보았다. 사르가소해에서 태어난 뱀장어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강과 하천으로 이동한 뒤 다시 태어난 바다를 향해 돌아간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여정이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기억해 온 긴 시간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길목마다 댐과 수문, 운하가 놓여 있다. 인간에게는 개발의 성과였겠지만 뱀장어에게는 돌아갈 길이 끊긴 순간이었을 것이다.
흑기러기의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보호해야 할 동물이었던 흑기러기는 개체 수가 늘어나자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북극곰은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북극 주민들에게는 지금도 두려운 맹수다. 순록의 삶에는 냉전과 핵실험의 역사가 스며 있고, 왕게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바다로 옮겨졌다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동물은 서로 다르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인간의 선택이 있었다.

최근 북극항로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한다. 기후변화와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해상 교역로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과거 탐험가들이 미지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던 이야기가 낯선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우리는 자연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보호할 수 있고 관리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책 속 동물들은 인간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계획보다 훨씬 넓고 오래된 시간을 살아간다.
책을 덮고 다시 지도들을 떠올려 본다. 레밍이 지나간 툰드라와 뱀장어가 건넌 대서양, 흑기러기의 이동 경로와 순록의 방목지, 왕게가 퍼져 나간 바다까지. 그것은 동물들의 삶을 기록한 지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 남긴 흔적의 지도이기도 하다.
<공존한다는 착각>은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보다 자연 앞에 서는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공존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