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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지웅배(우주먼지)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는 천문학자가 자신의 학문이 어떤 전제 위에서 작동해 왔는지를 검토하는 에세이다. 저자 지웅배는 연구와 교육의 현장을 오가며 천문학을 다뤄 온 인물로, 이 책에서 그는 대중에게 우주를 설명하는 해설자라기보다 학문 내부에서 질문을 던지는 화자로 등장한다.
저자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을 신념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과학적 전제의 문제로 되돌려 놓는다. 메조 코스모스와 미세 조정 문제,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는 우주가 인간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음을 반복해서 확인시키며, 이는 과학적 객관성의 선언이자 인간에게 특권적 지위를 배제하는 전제 설정으로 작동한다.

천문학이 다루는 것은 이미 사라진 별과 사건들이 남긴 빛과 신호다. 초신성 폭발 이후 남은 잔해처럼, 관측 가능한 것은 언제나 결과이며, 천문학은 그 결과를 통해 우주의 과거를 추적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발견의 성취가 아니라, 사라진 것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보이저 프로젝트와 골든 레코드는 이러한 태도를 구체화한다. 보이저 탐사선의 넘버링이 지구가 아닌 우주의 경로를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천문학이 처음부터 인간 중심적 관점을 벗어나도록 설계된 학문임을 보여준다. 챌린저 사고와 파인만의 O-링 실험 역시 실패를 통해 과학적 판단과 책임의 문제를 드러낸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상정한 완전한 예측 가능성을 비켜서며, 로컬 보이드와 디폴 리펠러,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을 통해 우주를 중심이나 목적이 아닌 관계와 흐름의 구조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우리 은하는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거대한 중력적 흐름 속에 위치 지어진 하나의 부분이다.

우주 달력에서 인간의 역사가 마지막 1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질문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잠시 존재하다 사라질 존재라면, 어떤 태도와 기록을 남길 것인가. 이 책은 천문학의 쓸모를 변호하지 않는다. 대신 쓸모라는 기준으로 학문과 세계를 평가해 온 인간의 사고방식을 조용히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