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 - 그랜드 투어, 세상을 배우는 법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쌤앤파커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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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18세기 유럽의 상류층 젊은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긴 여행을 떠났다. 로마의 예술을 보고, 파리의 사교 문화를 익히고, 베네치아에서 외교 감각을 배우는 이 여정은 한 사람의 품격을 완성하는 마지막 교육 과정이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체스터필드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섬세한 생활 감각과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아들이 낯선 땅에서 겪게 될 시행착오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아들이 유럽의 길 위로 떠난 뒤 편지를 통해 그 여정을 지켜보았다. 직접 곁에 있을 수 없는 대신 조언과 마음을 문장 속에 담아 아들에게 건넸다. 그는 생애 동안 아들에게 448통의 편지를 남겼고, 그중 5년간의 그랜드 투어 동안 153통을 보냈다. <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는 그중 핵심만을 골려 52통의 편지를 엮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체스터필드는 훈계자의 자리에 서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와 허세를 숨기지 않고, 젊은 날의 어리석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아버지다. “나는 너보다 훨씬 많은 어리석음을 저질렀다”라는 고백은 아들이 조금 덜 헤매길 바라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52개의 편지에는 말하는 법, 듣는 태도, 몸가짐과 옷차림, 힘의 균형 감각, 절제, 평생 배우는 자세처럼 시대를 넘어 중요한 태도들이 반복된다. 체스터필드가 말한 ‘보 몽드(beau monde)’란 사교적 기교가 아니라, 어디서든 품격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여행지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는 그의 믿음이 편지 전체를 관통한다.


편집자 김상근 교수의 ‘나가는 글’은 체스터필드의 조언을 고전적 충고에서 오늘의 삶에 필요한 태도의 원칙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 그의 해석을 따라 읽다 보면, 태도는 결국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그 문장을 하루의 첫머리에 두기만 해도 우리는 이미 각자의 그랜드 투어를 더 단단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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