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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정원 - 2000년 지성사가 한눈에 보이는 철학서 산책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철학의 정원』을 펼쳤다.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100여 명의 철학자를 불러내, 인생·사회·언어·과학·종교 등 여덟 갈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시대순이 아닌 주제별 배열 덕분에 서로 다른 철학자들이 같은 물음 앞에서 어떻게 다른 목소리를 냈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나는 중요한 문장을 필사하며 책을 읽었다. 손끝으로 옮겨 적으니 글이 쉽게 흘러가지 않고 오래 머물렀다. 그중에서도 3장 「세계와 자연에 관하여」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는 인간을 단순히 ‘대상’이 아니라 ‘너’라는 인격적 존재로 바라보게 했고, 메리 울스턴크레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는 강한 감탄을 자아냈다. 1700년대라는 시대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다는 사실, 그 담대한 목소리가 놀랍고도 존경스러웠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난이도 표시다. 1에서 3까지 구분된 난이도 덕분에 독자는 자신의 수준에 맞게 책을 선택할 수 있고, 어려운 철학자를 만나도 ‘원래 그렇구나’ 하며 안심할 수 있다. 각 장 끝에 덧붙은 ‘철학자의 한마디’는 짧지만 강력했다.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문장들이 화두처럼 남아,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물론 몇 문장 인용만으로 철학자의 저작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철학의 정원』은 철학을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묻고 따져볼 수 있는 길잡이로 되돌려준다. 필사한 문장을 다시 펼쳐보면, 고전의 목소리가 지금도 여전히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