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2018년 평창올림픽 폐막식. ‘조화의 빛’이라는 주제 아래 펼쳐진 무대에서 나는 처음으로 ‘잠비나이’를 보았다. 거문고 군무와 피리, 전자기타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 안에서 해금의 떨림이 묘하게 중심을 꿰뚫었다. 전통과 현대, 절제와 파격이 충돌하던 그 소리의 중심에 김보미가 있었다. 그날의 전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몇 년 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전시 <상상의 정원>에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이번엔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감독이었다. 이번엔 무대가 아니라 공간이었다. 시각예술과 음악이 교차하는 전시에서 그녀는 풍경과 감각의 틈에 소리를 입혔다. 해금의 떨림은 더 조용했고, 더 오래 여운을 남겼다. 거기엔 단순한 연주자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김보미의 첫 에세이 <음악을 한다는 것은>은 그런 공연과 공연 사이의 여백에서 태어난 책이다. 무대와 앨범 사이, 연습실과 새벽, 묵음과 울림 사이에서 그녀는 질문한다.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해금이라는 오래된 악기로 나는 어떤 감정을 기록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고요한 사유이자, 감각의 멸종 앞에서 한 연주자가 남기는 작은 울음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음이 쌓이다’에서는 해금을 선택하게 된 이유, 연습보다 더 오래 마음을 다지는 시간, 공연 전날의 불면 같은 연주자의 내면 풍경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왜 해금이었을까”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말” 같은 꼭지에서, 그녀는 음악을 둘러싼 말들에 쉽게 안주하지 않고, 조심스레 의심하며 스스로의 감각을 되묻는다.

2부 ‘두 줄 사이를 오가며’에서는 무대 위 해금 연주자로의 저자가 등장한다. 잠비나이의 시작, 장르를 개척한다는 것, 평창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해외 투어에서 만난 관객들과의 교감. 해금의 두 줄은 단지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아니라, 삶의 균열과 균형, 파열과 고요 사이를 걸어가는 선이다. “거칠게 긁고, 때리고, 깨지는 듯한” 사운드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자신만의 숨을 세며 연주를 이어간다.

그녀는 해외의 수많은 공연에서 관객들과 진한 감정을 교류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낯선 악기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그때마다 음악이 국경을 넘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무대에서도, 그녀는 해금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책은 그런 깨달음의 무대 뒤편에서 시작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이 에세이는 저자의 연주의 기록이나 저자 자신의 삶의 연대기가 아니다. 저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음악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의 오십견이 자연스럽게 치유되길 기원하며 저자가 추천해 준 곡들과 잠비나이의 연주를 들으며 에세이가 준 긴 여운을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