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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식당 개성밥상 - 고려의 맛과 멋이 담긴
정혜경 지음 / 들녘 / 2021년 2월
평점 :
‘고려’(918년~1392년)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먼저 Korea가 생각나고, 고려 인삼, 무인, 불교, 고려청자 등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개경’은 어떠한가? 개성상인, 선죽교, 개성공단 외에는 딱히 아는 것이 없다. 더군다나 개성 음식이라면 더욱 문외한이다.
수없이 많은 사극과 영화는 조선 시대, 한양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가끔 고려에 대한 드라마도 있지만, 훨씬 더 부족한 편이다. 아무래도 관련 문헌이 많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려인의 호방한 기질, 자유로운 성품 등을 잘 느낄 수 없다. 또한 고려의 수도 개성은 북한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낯설게 느껴진다.
개성은 고려의 500년 수도였고, 예전에 송도, 개경으로 불렸다. 유명한 기생 황진이의 고향은 개성이고, 당시 개성에는 관기제도가 있어서 기방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개성 음식은 화려하고, ‘술의 안주’로서도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개성 음식의 화려함 역시 기방 음식 문화의 발달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p21
그렇다고 개성 음식이 자극적인 것이 아니다. 남쪽의 음식이 짜고 맵다면, 북쪽의 음식은 싱겁고 심심한 맛인데, 개성은 그 중간에 있다고 한다. 적당히 간이 맞고, ‘중용’의 도를 잘 지킨 것이다. 요새 음식은 너무나 자극적인 것이 많아서 쉽게 유혹을 받지만, 또한 쉽게 질리기도 하다. 더군다나 건강에는 좋은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 ‘고유의 맛’을 살린 개성 음식이 그야말로 건강한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다.
“개성은 한반도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로 이러한 지리적 조건이 고려의 수도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작용하였겠지만 음식 맛에서도 역시 중용에 해당하는 치우치지 않은 맛을 드러낸다.” - p18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짐승에 대한 무분별한 살생이 금기시되었다. 따라서 고려인은 곡물을 주로 많이 먹었고, 벼, 맥류, 콩류, 조, 기장, 피 등이 주식이었다. 또한 쌀은 세금으로 사용될 정도로 귀했다. 귀족은 햅쌀을, 일반 서민들은 묵은쌀을 먹었다. 살생은 금지되었지만 육류를 아예 먹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돼지, 양, 닭, 물새, 사슴, 멧돼지 등을 먹었다. 때로는 소와 말도 필요 없을 때 먹었다.
고려 말기에는 원나라의 영향으로 육식 문화가 발달했다. 원으로부터 육식 조리법을 배우면서 고기를 국물과 함께 먹었다. 원나라에서 영향을 받아서 곰탕이 생겼고, 이것이 설렁탕, 육개장, 갈비탕의 원형이 되었다.
특히 신분에 따라서 음식이 달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를 법령으로 정할 정도였다. 또한 현재 한식의 기본이 되는 밥과 국. 이러한 조합은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국으로는 토란국, 아욱국, 다시마 국, 미역국 등이 있었고, 콩나물과 두부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불교의 발전으로 다도, 즉 차 문화가 발달했고, 한과도 이 때 생겼다. 왕실에서 왕은 곧잘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러한 연회도 화려한 음식 문화를 꽃피우는 데 도움을 줬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연회는 나중에 사회의 폐해가 되기도 했다. 권무가의 잔치 때는 몇날 며칠씩 노래하고 취하기가 예사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러한 문화가 지나친 소비를 유발해서 왕명으로 규제를 했을 정도다.
또한 개성에는 ‘개성상인’이 있었기 때문에 부를 일군 부자들이 많았다. 이러한 배경도 개성 음식 문화를 발달하게 만들었다.
“개성 음식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개성상인들을 배경으로 넉넉하고 여유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 p20
개성상인은 고려 인삼과 청자를 주변국에 널리 알렸다. 또한 개성에는 수많은 외국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다양한 음식을 전했다. 설탕, 후추는 송나라와 교역을 통해서 들여왔다. 반대로 고려의 음식 문화 중에서 원나라에 전해진 것은 ‘상추쌈’이다. 원나라에 강제로 보내진 공녀들, 고려 풍속을 전했는데, 이를 ‘고려양’이라고 일컫는다. 이들이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해서 상추를 심어서 먹었고, 그것이 원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고려청자는 귀중한 유물이지만, 당시에는 음식을 담는 보통 ‘그릇’이었다. 서민들도 청자로 된 그릇을 사용했다. 이 그릇에는 다양한 개성 음식이 담겼다. 개성편수, 보 김치, 장떡, 집산적, 설렁탕, 닭볶음탕 등 정말로 다양하다. 물론 이 음식들 중 대부분은 맛 볼 수가 없어서 책에 나온 그림을 토대로 맛을 상상해 본다.
이 책의 내용이 대부분 왕실과 귀족과 같은 상류층의 음식 문화를 다루지만, 서민층에 대한 음식 문화는 기록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고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노비가 때로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늘 먹을 것이 부족해서 나무 열매와 잎으로 연명했을 정도다. 이는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정권이 바뀌더라도 서민의 삶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책의 제목답게 개경은 아마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될 것 같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영토에 있었고, 고려의 수도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경은 한반도의 중심이 되고, 또한 음식 문화도 재조명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다양한 개성 음식을 알게 되었고, 또한 음식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릇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개성음식이 ‘개성 있는 음식’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독특하면서 공감이 간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