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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서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
허공당 혜관 지음 / 파람북 / 2022년 9월
평점 :
오랜만에 스님이 쓰신 불교 에세이를 읽고 있자니, 옛날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던 고려 후기 고승 나옹 선사(1320~1376)의 시가 떠올랐다. 가끔 소리 내서 읽어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졌던 기억이 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 선사-
원래 불교의 교리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지마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불교의 진리는 나옹선사의 시 같은 것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고,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서의 불교 말이다.
에세이의 첫 꼭지에 나오는 할매 보살님은 자식을 출가시킨 후 세속을 떠나 자질구레한 절 일을 하시면서 공덕을 쌓으셨다고 한다. 분명 불교 교리를 정식으로 배우시지 못했을 텐데, 히말라야로 떠나는 스님에게 꼬깃꼬깃한 만 원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많이 드리면 욕심이고요, 적게 드려도 욕심이래요."
상대방에게 내가 덕 보기 위해서 많이 주는 것도 욕심이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거나, 내가 더 많이 소유하려고 적게 주는 것도 욕심인 것이다. 이래저래 욕심을 버리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 참 어렵다.
고 김선자 할머님은 광주 재래시장에서 천 원짜리 백반집 '해 뜨는 식당'을 열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끼 밥상과 행복을 전했다. 밥 값이 천 원이라 '천 원 할머니'라고도 불리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무료로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밥 값 천 원을 받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천 원이란 돈이나마 받는 이유는, '밥값이 싸니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은 성품을 기르라'라는 뜻이고, 내가 천 원이란 돈이나마 받는 이유는, '천 원이나마 밥값을 내니까 당당하되 거만하지 않은 성품을 기르라'라는 뜻이야. "
공짜로 밥을 먹으면 스스로 비굴한 마음을 가질까 봐, 밥 값을 내고 당당하게 밥을 먹으라고, 그렇다고 해서 비싼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의 형편도 생각해서 책정한 가격이 천 원이었을 것 같다.
천 원 할머니는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알고,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남 앞에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 세상 외로운 목숨들은 넝마의 집마저 나누어 잠들듯,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더 나누고 사는 감동적인 뉴스를 흔치 않게 보게 된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그 가난함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 도울 수 있다.
혜관 스님은 정말 가진 게 하나도 없어 베풀게 없다고 해도 베풀 수 있는 게 있다고 한다. 불경 ≪잡보장경≫의 말씀 중 재물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덕목 '무재칠시'가 그 답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재물이나 음식을 베푸는 것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있다. 것도 더 소중한 베풂이.
늘 온화하고 미소 띤 얼굴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고, 항상 공손하고 따뜻한 말을 쓰고,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베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복 있고 가치 있는 삶이 어디 있으리. 그렇기에 내가 있어서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