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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표점 용사일기
이노 지음, 이춘욱 옮김 / 메이킹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학봉 김성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임진왜란 전 조선은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을 일본에 파견한다. 정탐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의 당파적 성향 때문에 귀국 후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침략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평을 남긴다. 이 일화가 일제의 당파성론의 영향으로 확대해석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김성일은 조선 최대의 위기인 임진왜란의 징조를 파악하지 못한 무능한 사람으로 회자되고는 한다.
어느 역사적 인물이 그러하듯 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김성일의 잘못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조정은 분노했고 그를 서울로 압송하여 국문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전란의 수습이 급선무라 판단하여 곧 그를 경상우도 초유사로 임명한다. 사실 이 부분이 그리 이해되지 않았다. 어쨋든 정치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의 잘못된 판단은 전쟁의 피해를 확대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다.
용사일기는 학봉 김성일을 따라 종사관으로 활약한 송암 이노의 용사사적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이노가 작성하였지만 주로 임진왜란기 김성일의 활동을 서술하고 있다. 경상우도 초유사의 임무를 맡고 김성일은 정말 분골쇄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본인 스스로도 본인의 과오를 뉘우치고자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하였을 듯하다.
김성일은 자칫 격화될 수 있는 의병들 간의 다툼이나 관군과 의병 간의 지휘권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엄하게 전란 중 아군의 갈등을 무마시켜 나갔다. 또한 이 책에는 의병들과 군사들의 사기를 위해 엄정한 논공행상을 펼칠 것을 간청하는 기록과 군량미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결국 눈을 감기까지 김성일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였고 결국 그의 노력은 전란의 극복에 큰 힘이 되었다.
역사적 평가는 조심스럽고 또 어렵다. 과오를 공으로 덮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역사 속 김성일만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으로 그 과오를 책임지는 사람도 드물다. 용사일기를 읽고 난 후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그가 없었다고 해서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패퇴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지만 그가 없었다면 임진왜란 시기 경상도의 피해는 더 극심했을 것이고 의병의 찬란한 전공도 지금처럼 찬란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명군의 지원도 더욱 미미했을지 모른다.
또한 이 책은 그 자체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기록을 번역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원문 수록과 함께 해석과 사건에 관한 저자의 의견 또한 담고 있어, 역사 연구자에게는 매우 고마운 책이다.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저자의 세심한 배려와 출판사의 발간 결정에 큰 감사를 느낀다.
많은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학봉 김성일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해보고, 임진왜란 시기 전란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인물들의 노력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