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윤은주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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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는 모두 크게 봐서 선역과 악역이 존재한다. 선역은 지고지순한 가치를 지키며 탄압과 괴롭힘을 이겨내면서 올바른 길을 걸으려 하고, 악역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며 질서를 파괴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명확한 선악의 대립을 지켜본다.


사회생활을 하며 들었던 말 중의 하나는 "그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럴듯 하다. 일정한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좀 더 우선시하고 오해와 소통부족이 있을 뿐 사악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실제로 살아보니 진짜 악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괴롭히면서 쾌락을 느끼고, 남의 고통을 비웃는다. 국가와 공동체를 생각하기 보다 자신의 이익 앞에 모든 선한 가치를 구부리며, 권력을 이용해 타인의 삶을 모독한다. 어쩌면 우리가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악역은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의 한 단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에 대한 고민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만큼 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사상가도 드물다.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잔혹한 비인간적 행위를 어떻게 인간이 실현할 수 있었는가. 아렌트는 그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세계인이 기대했던 악의 화신 아이히만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악역에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한 모습. 그것에 아렌트는 의문을 품었다. 아렌트가 도출한 악의 평범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12.3내란으로 촉발된 위기 가운데 다시 아렌트를 소환한다. 아무런 배경지식과 전문적인 해석 없이 이해하기 힘든 여타의 철학책처럼 아렌트의 저작과 사상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철학과 소설, 드라마, 실제 사례를 빌려와 아렌트의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아렌트의 사상이 주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의지하며, 판단하는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의 주체가 될 것. 그리고 오염된 공론장을 정화할 것. 저자의 생각이자 아렌트의 사상은 그 자체로 오늘날 우리사회에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가짜뉴스와 거짓 선동, 내란과 폭동이라는 선악의 문제가 실존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이야기, 이해는 자칫 양비론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책의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철학자의 가장 이상적인 순간은 그의 철학이 모두 실현되어 진부한 것이 되어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아렌트가 너무나도 필요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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