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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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가 미국의 역사에 엄청난 획을 그은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새해의 설렘이 채 가시지 않았던 202116일 우리는 민주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 발생한 의회 폭동에 충격을 받았다. 분노한 시위대와 완전히 파괴된 미국의회의 뒤로 주먹을 불끈 쥐고 미묘한 표정을 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날 세계는 떠올렸다. 민주주의의 모태 미국의 현주소와 민주주의의 종말을.

그 후 트럼프는 사라지고 미국의회 폭동은 어찌되었든 마무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상당히 쇼킹한 일회성의 해프닝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24년 트럼프가 다시 돌아왔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우리나라 국민들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감과 한편으로는 약간의 우월감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민주주의의 산실에서 일어났다니. 그리고 폭동을 지휘한 이가 다시 최고 권력자가 되다니. 미국을 보며 그만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굳건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123일을 맞았다.

 

솔직히 12310시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쌀쌀했지만 그리 춥지 않았던 것 같은, 122일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근했고, 수업을 했고, 시간이 되어 퇴근하고 저녁의 일상을 보냈다. ‘가 뉴스에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에 몸이 떨렸다. 두려웠다. 곧 전화가 도청되고, 통행금지가 떨어지고, 모든 출판물이 검열될 것이라 생각했다.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는 사람들, 고문과 폭력에 희생될 사람들, 몽둥이와 총에 피를 뿜을 사람들. 그 모든 풍광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는 2021년의 미국을 비웃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 아니 어쩌면 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시기에 이 책은 마치 우리의 상황을 예언하든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미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하며 미국 정치 상황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과 함께 왜 미국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저자들은 미국의 극단적 소수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민주주의의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이유 때문이었다. 정당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잊어버렸으며, 극단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들은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다수의 의견을 무력화 시킨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병들었다.

 

저자들의 진단은 단순한 현상 분석을 넘어 절박함이 묻어난 외침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는 외침 말이다. 자유와 인권, 관용과 절제의 역사 위에 미국의 번영과 민주주의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미국은 이 찬란했던 기억을 상실해 버렸다. 어떻게 다시 중태에 빠진 미국의 민주주의를 치료해야 하는지 저자들은 냉정하게 처방한다. 제도적으로 미국은 투표권을 확립하고, 선거결과에 다수의 민의가 반영되도록 해야 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치료법만이 미국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은 미국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힘찬 걸음을 내딛었던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비록 어렵겠지만 민주주의의 회복과 개혁을 위한 논의를 그치지 말 것을 호소한다.

 

이 책을 통해 본 지금의 미국보다 대한민국의 상황은 훨씬 낫다. 12.3내란으로 촉발된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폭력과 거짓선동, 반헌법세력의 몽니에 맞서 법치주의를 지키고 드디어 내란수괴를 적법한 절차로 파면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것은 민주주의란 명사가 아닌 동사였다는 사실이다.

 

그날 밤 두려움을 이기고 맨몸으로 국회로 나갔던 시민들, 목숨을 걸고 담장을 타 넘으며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노력한 국회의원들, 그 차디찬 겨울 아스팔트 바닥에서 응원봉을 흔들던 국민들은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복원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촛불혁명 등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을 막아왔던 우리의 역사적 유전자 덕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회복에 실패했다면이라는 가정을 보여주는 나쁜 멀티버스를 보여주는 듯 하다. 동시에 이 책은 우리에게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 국민들이 언제라도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경시한다면 이 멀티버스는 우리의 눈앞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민주주의의 종말이라는 황혼이 깃들기 전 우리에게 날아온 미네르바의 부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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