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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ㅣ 千년의 우리소설 14
김시습 지음, 박희병.정길수 옮김 / 돌베개 / 2024년 12월
평점 :
심산유곡의 용장사에서 선비는 붓을 들었을 것이다. 밤이고 낮이고 머리 속으로 이야기를 그리며 인물과 사건, 배경을 그려냈을 것이다. 어느 문필가가 그러하듯 어느날은 하루종일 붓을 들고서 하루에 한자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었을 것이고, 어느날은 미친듯이 자신의 감정을 종이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세상이 인정한 천재, 뛰어난 학식과 재능은 물론 티 없이 맑은 도덕성을 지닌 그는 붓 끝으로 5편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는 매월당 김시습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김시습이 활동하던 시기는 계유정난으로 인해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시기였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유자들의 태도는 갈렸다. 누군가는 폐위된 어린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지조와 절개를 지키려 하였고, 누구는 시세의 흐름이라 위안하며 변절했다.
김시습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이 믿던 정의가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흔들리며 악이 성행하는 세상이 그의 눈에 담겼을 것이다. 부정과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 맑은 선비는 나아갈 곳을 잃었다.
유자가 난세에 지은 소설은 그 내용을 지레짐작할 수 있다. 틀림없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정의를 이야기하고, 권성징악의 교훈을 주려고 하였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금오신화>에는 그런 내용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금오신화>는 지극히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신선과 선녀가 나오고 염라대왕과 용왕이 등장하는 이야기, 결국 위로와 현달을 저 세게에서 얻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난세를 겪는 지조 있는 선비가 지은 글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시습을 둘러싼 배경과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나면 <금오신화>는 다르게 보인다.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었던 암울한 현실 속,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권력의 폭압 앞에 그는 차라리 이상향을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고뇌와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 김시습은 그런 세계를 갈구하며 소설을 창작하며 자신을 그리고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가 소설에 나타난다. '남염부주지'에서 염라가 말하는 "나라를 가진 자는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되오...무릇 나라는 백성의 것이요, 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는 말은 김시습이 그토록 세조에게 전하고 싶었던, 참고 또 참는 가운데 도저히 다 누르지 못해 튀어나온 일갈이다.(그리고 한남동에 박힌 그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금오신화>에는 많은 시가 삽입되어 있다. 시가 소설을 읽는데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치 한편의 뮤지컬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역자들은 한문을 공들여 해석해 그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또 다시 어두운 세상이다. 그래도 김시습이 살던 시절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시 불을 켜고 어둠을 몰아내자. 해가 뜨기까지 그리 멀지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