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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24년 11월
평점 :
지식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위에 따른 특권을 누리며, 이 특권은 기회를 제공한다. 기회는 책임을 부여하고, 책임은 선택을 요구하며, 선택은 때로 어렵다. -노암 촘스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 이 단순하고 자명한 명제가 진리가 되기 위해 인류사에서 수 많은 지식인들이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크리스트교 교리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교회가 세워놓은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위험한 주장이었다.
코페르니쿠스 본인도 책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자신이 계산하고 논증한 지동설을 책으로 출판해야 할 지 스스로도 고민을 하였다. 그의 책 곳곳에 서술하고 있듯 자신의 연구가 미칠 사회적 파급력을 코페르니쿠스는 짐작을 하고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망설임 끝에 그는 용기를 내었다. 그 용기의 결실이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이다. 그리고 이 책은 중세적 우주론이라는 낡은 성벽을 무너뜨렸다.
나는 천문학자도, 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닌 역사 연구자이기에 그의 이론이 얼마나 엄정한 천문학적 지식의 토대 위에 서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인간의 세계관에, 인류의 지성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떠한 것인지는 논할 수 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읽어보면 코페르니쿠스가 얼마나 진지하게 또 얼마나 성실하게 지식을 쌓아 올렸는지 그 태도에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는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상식’에 도전했으며 치밀하고 정밀하게 반론을 펼치고 자신의 주장에 논거를 제시한다. 그렇다고 그는 독단을 내세우지 않으며 유클리드, 플라톤 등 선배 지식인들의 지식을 적극 활용한다. 기하학이나 천문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 책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는 학문을 대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자세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가 그러하겠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더욱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상식과 정의,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를 바라보며, 또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부와 권력에 굴복하여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약 500년 전 진리를 위해 용기를 낸 한 지식인의 결단과 학문의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 하다.